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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기부천사들

[이규섭 시인님] 기부천사들

by 이규섭 시인님 2021.12.31

코로나19 팬데믹에 시달린 팍팍한 삶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채 또 한 해가 저문다. 마스크를 쓰고 2년째 살다 보니 마스크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 거리에서 지인을 만나도 누군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코와 입을 가린 마스크처럼 이 세상의 반쪽만 보고 살아온 느낌마저 든다. 코로나 예측이 빗나가 기대를 걸었던 일상은 45일 만에 무참하게 무너졌다. 이런 판국에 온정을 베풀자고 말하기조차 어렵다.
그래도 세모의 풍경 중 변하지 않는 것은 서울시청 앞 ‘사랑의 온도탑’과 거리에 등장한 구세군 냄비다. 서울광장 앞쪽 코로나 임시 선별 진료소엔 줄이 길게 이어진 반면 구세군 냄비 부근은 딸랑딸랑 종소리만 공허하게 울린다. 세밑의 서글픈 풍경이다.
사랑의 온도탑 전면 상단엔 ‘희망 2022 나눔 캠페인’ 문구와 함께 ‘나눔 온도 100도’ 대형 온도계가 설치돼 있다. 온도계 하단엔 올해 캠페인 슬로건인 ‘나눔, 모두를 위한 사회 백신’을 새겨놓았다. 12월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62일간 모금 목표는 3700억 원이다. 사랑의 온도탑은 나눔 목표액의 1%가 모일 때마다 수은주가 1도씩 올라간다.
코로나 장기화로 경제는 수렁에 빠졌고, 소상공인들의 한숨은 깊어간다. 음식점 등은 위드 코로나로 연말연시 특수를 기대했다가 물거품이 됐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1만 원 이하 점심 식사 메뉴는 찾기 어렵다.
그런데도 기부천사들이 있어 얼어붙은 마음을 훈훈하게 녹인다. 가명의 기부천사 김달봉씨는 전북 부안 군청에 대리인을 보내 종이가방 속에 5만 원권 100개씩을 묶은 지폐 1억 2000만 원을 놓고 사라졌다. 최근 3년간 부안군에 기부한 돈과 물품은 6억 원을 넘는다.
2016년 말 인천 3개 구(區)의 공동 모금회에도 김달봉씨가 나타나 각 5000만 원씩 1억 5000만 원을 기부했다. 그는 부안의 김달봉씨와 다른 사람으로 알려졌다. 또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도 몇 년째 연말마다 1억 원씩 기부하는 김달봉 씨 이름이 등장하고, 사랑의 연탄나눔운동에도 2017년부터 3년간 5000만 원∼1억 원씩 후원한 김달봉씨가 있다.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있으며 부안의 김달봉씨와 같은 인물인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김달봉은 ‘기부계의 홍길동’으로 불린다.
이달 초엔 서울 중랑구의 한 주민센터에 40대 중반의 남자가 나타나 후원 담당 직원에게 봉투를 꺼내 주었다. 5만 원짜리 지폐 20장 1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부모님이 기초생활수급자였는데 이곳 주민센터에서 생계비도 받고 여러 도움을 받아 아버님이 세상을 뜨기 전 저한테 기부해 달라고 주신 돈이라고 밝혔다. 주민센터는 기초생활수급자의 기부는 매우 드문 경우로 100만 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지난해엔 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온도탑의 기온이 115도를 넘겨 목표치를 훌쩍 넘겼다. 우리나라 기부 규모는 2019년 기준 연 14조 5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개인 기부가 65%를 차지하여 기업이 낸 돈 보다 훨씬 많다. 올해도 사랑의 온도가 100도를 넘어 펄펄 끓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