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오피니언

오피니언 : 아름다운사회

[이규섭 시인님] 범 내려온다

[이규섭 시인님] 범 내려온다

by 이규섭 시인님 2022.01.07

임인년(壬寅年)인 올해를 ‘검은 호랑이해’라고 한다. 상서(祥瑞)로운 기운의 범이 내려온다. 1만 2000년 전부터 한국에 살았다는 호랑이는 단군신화부터 88올림픽 마스코트까지 한국인의 삶과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옛이야기에도 호랑이는 자주 등장한다. ‘호랑이와 의형제’ ‘까치와 호랑이’ ‘곶감과 호랑이’를 어렸을 적 흥미 있게 들었다. 이야기 속 호랑이는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의로운 존재거나 때론 포악하고 어리석어 골탕을 먹는 친근한 동물로 그려졌다. 까치호랑이는 민화로 탄생되어 살가운 존재로 다가온다. 죽어서는 가죽을 남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소장 김난도 교수)가 2022년 트렌드를 10가지 키워드로 전망해 흥미를 끈다. △나노 사회 △머니 러시 △득템력 △러스틱 라이프 △헬시 플레저 △엑스틴이 돌아온다 △바른생활 루틴이 △실재감 테크 △라이크 커머스 △내러티브 자본 등이다. 트렌드 키워드의 첫 글자를 따서 ‘TIGER OR CAT’으로 명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누군가는 호랑이로 성장할 수 있고, 고양이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올해는 치열한 전장(戰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핵심적 키워드는 ‘나노(nano) 사회’다.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직장이나 각종 모임은 물론 가족도 결속력을 잃는다. 개개인은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홀로 살아가기’는 집단생활의 사자와는 달리 호랑이의 습성이기도 하다.
‘나노’란 빛의 파장같이 짧은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다. 1나노미터는 1미터의 10억 분의 1로 짧다. 올해를 ‘나노 사회’로 규정한 만큼, 공동체가 모래알처럼 개인으로 흩어지면서 트렌드의 미세화와 함께 ‘노동의 파편화’ ‘산업의 세분화’가 이뤄진다는 예측이다.
‘나노 사회’에서 홀로서기를 하려면 ‘내러티브 자본(tell me your narrative)’인 자기만의 서사(敍事), 즉 내러티브를 들려줄 힘이 2022년의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힘이 ‘돈’과 ‘권력’, ‘명예’가 되는 시대라는 뜻이다. 나만의 독창적인 이야기가 없으면 생존하기 어렵다.
주식이나 비즈니스 영역은 물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선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의 서사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3월과 6월에 치러질 ‘대선’과 ‘지방선거’가 ‘내러티브 전쟁’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네거티브’가 아닌 ‘내러티브’ 전략을 잘 짜고 내러티브를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후보가 선거전에서 유리하다고 내다봤다. ‘머니 러시(money rush)’는 돈을 향해 돌진하는 시대를 의미한다. 돈을 향해 돌진하되, 그 방향이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공존과 상생을 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발간한 ‘2022 세계 대전망’도 코로나19 팬데믹 종식과 함께 노동과 휴식의 패턴도 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렁차고 용맹한 검은 호랑이가 힘차게 포효한다는 운기의 해에 상서로움이 역병을 물리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