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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스님] 삶의 종점

[정운 스님] 삶의 종점

by 정운 스님 2022.01.25

옛날 몇 백 년 전 한양에 갑부가 살았다. 이 갑부는 하인 한 사람과 함께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인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저승사자를 만났는데, 저승사자로부터 ‘잠시 후에 데려가겠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하인은 주인에게 말 한 마리를 빌려달라고 하였다. 하인은 가장 빠른 말을 타고, 오늘 밤에 북쪽 개성으로 도망가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주인은 흔쾌히 말을 빌려주었다. 주인은 하인을 배웅하고, 발길을 돌려 집안으로 들어가는 중에 저승사자를 만났다. 주인은 저승사자에게 따져 물었다.
“왜 내 하인에게 겁을 주고 그러느냐?”
그러자 저승사자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는 그에게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에 개성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곳에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오히려 놀란 것뿐입니다.”
웃기면서도 슬픈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아무리 도망치려고 해도 가야 할 곳이다. 인간세계는 빈부귀천이 있어 불평등한 삶인 것 같지만 죽음만큼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다. 중국의 사상가 열자列子는 ‘죽은 사람을 돌아가셨다[歸人]’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돌아가셨다’는 표현에는 죽은 뒤에 누구나 다 돌아갈 곳인데, 먼저 가서 기다린다는 산자에 대한 위로의 말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인들이 존경하는 법정 스님(1932∼2010)은 살아생전에도 잠시 출타를 할 때는 늘 죽어가는 그 순간을 맞이하는 것처럼 짐을 꾸렸다고 한다. 스님은 혼자서 이삿짐을 주섬주섬 싸고 있을 때 문득 시장기 같은 것을, 허허로운 존재의 본질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법정 스님의 말씀이다.
“때가 되면, 삶의 종점인 섣달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미리부터 연습을 해두면, 떠나는 길이 훨씬 홀가분할 것이다.”
법정 스님은 입적하기 몇 해 전에 미리 유서를 써두었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 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가 되어야 한다.”
근자에 의학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있다. 하지만 양적으로 늘어난 것이지, 심신心身 모두에 질적인 연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아직 노년은 아니지만 작년부터 인생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잘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깊어졌다. 아마 누구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된다. 어찌 되었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에 열심히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