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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종교는 욕심을 챙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한희철 목사님] 종교는 욕심을 챙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by 한희철 목사님 2022.01.26

썩지 말아야 할 것이 썩으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심한 악취를 풍깁니다. 은은히 향기를 풍겨야 할 것이 향기 대신 악취를 풍기니 딱하기로 하자면 그보다 딱한 일이 없습니다. 썩지 말아야 할 것이 썩어 악취를 풍기는 것 중에는 종교가 있습니다.
종교(宗敎)라 할 때의 ‘宗’은 ‘마루 종’입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란 ‘마루에 해당하는 가르침,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높고 으뜸이 되는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가 엉뚱한 일로 악취를 풍길 때면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까지도 불쾌하고 어두워집니다. 가르치기는 하찮은 것이라 가르치고, 그것을 챙기느라 스스로의 가르침을 뒷전으로 밀어버리는 모습은 볼썽사납기 그지없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고 자리와 지위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 대표적인 경우라 여겨집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살육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노예로 삼는 일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죄를 용서해 주는 대가를 돈으로 받기도 했으니 하늘을 바라보기가 민망할 지경입니다.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던 앤소니 드 멜로가 들려주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길에서 커다란 금덩이 하나를 주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믿는 종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발견한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있으나, 자기가 그것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최소한 세 번을 시장 한가운데에서 알려야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믿는 종교의 법을 무시하기에는 너무도 종교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기가 발견하여 얼마든지 자기 것이 될 수 있는 것을 잃어버릴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도 욕심이 많았습니다.
고심 끝에 그가 선택한 것이 있습니다. 모두들 깊이 잠든 밤을 틈타 그는 시장 한복판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내가 금덩이 하나를 주웠소. 임자를 알고 있는 사람은 즉시 나를 만나도록 하시오.” 하루, 이틀, 사흘, 세 번에 걸쳐 그는 같은 일을 반복하였습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세 번째 밤에 우연히 창가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그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를 물었을 때, 그가 대답을 합니다. “자네에게 말할 의무는 결코 없고말고. 하지만 이 정도는 말해 주기로 하지. 종교인이니만큼 나는 밤중에 저기 나가서 법을 이행하는 어떤 말을 발설했다네.”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앤소니 드 멜로가 이야기 끝에 덧붙이고 있는 한 마디 말이 정곡을 아프게 찌릅니다. “철저히 교활하기 위해서는 법을 어겨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문자 그대로만 지키면 된다.”
이 땅의 모든 종교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섬기고 살리는 그 본연의 자리로 말이지요. 종교는 결코 욕심을 정당화하는 도구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