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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인사동 엘레지

[이규섭 시인님] 인사동 엘레지

by 이규섭 시인님 2022.02.04

서울 인사동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 문화공간이다. 1970년대 한옥에 한정식집 거리로 시작해 부근에 골동품점, 전통공예품점 등이 밀집해 서울의 대표적인 상권으로 자리 잡았다. 한류 열풍이 불던 2000년대 후반 명동거리와 함께 외국인 관광객 필수 코스 중 하나였다.
미로 같은 골목에 자리 잡은 한정식집도 옛 분위기는 아니다. 방석에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토속 음식을 먹던 식탁은 대부분 사라지고 의자에 앉는 방식으로 개조했다. 단골 고객들도 세월에 허리가 굽어 방석에 앉았다 일어서기가 불편한 나이가 됐다. 예인들의 멋과 풍류가 묵향처럼 번지던 거리는 국적 불명의 싸구려 상혼으로 정체성을 잃은 지 오래다. 주요 화랑이 전시의 옷을 갈아입으며 명맥을 잇는다.
세상에 소풍 왔다가 하늘로 돌아간 천상병 시인의 아내 문순옥 여사가 운영하던 ‘귀천’에서 부부를 함께 취재하던 시절도 아스라한 기억으로 남았다. 천 시인의 뒤를 따라 문 여사가 세상과 이별 한지도 10여 년 넘었고, 지금은 조카가 명맥을 잇고 있다. 80년대와 90년대 초 ‘평화 만들기’ 주점은 문화 예술인들의 아지트였다. 술기운이 도도하게 오르면 세상을 향한 분노를 토해내 ‘평화’가 흔들리기 일쑤였다. 개그계의 풍운아 전유성은 20여 년 전 낡은 책걸상 몇 개 들여놓은 ‘학교 종이 땡땡땡’ 카페를 운영했다. 청송에서 코미디극장을 운영하다 요즘은 지리산 언저리에서 여생을 보낸다.
추억 서린 한국의 대표 전통 상권이자 외국인에게 최고 관광코스로 꼽히던 인사동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1층 점포 3곳 중 1곳이 문을 닫았다. 임대료도 코로나 2년 만에 3분의 1 토막이 나고 권리금도 사라진지 오래다. 첫 번째 악재는 2017년 사드(THAADㆍ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태다. 핵심 고객이던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휘청거렸다. 코로나가 2년째 발목을 잡아 빈사상태가 됐다. 일어와 중국어로 꿀타래를 팔던 젊은 청년의 목청도 들을 수 없다. 외국인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던 바이올린 선율도 사라졌다. 근본적인 문제는 전통 업종만을 대상으로 한 업종 규제다.
정부는 전통문화 보존을 위해 인사동 일대를 2002년 전국 최초로 문화지구로 지정했다. 인사동 메인 상권을 대상으로 그림, 골동품, 공예, 표구, 지필묵 등 5개 업종을 정했다. 반면 프랜차이즈 음식점, 유흥주점 등 수십 가지는 금지 업종으로 지정했다. 메인 상권 1층에는 음식점, 휴게음식점, 제과점, 화장품 판매점, 안경점조차 들어설 수 없다. 2층 이상에만 전통찻집이나 제과점을 운영할 수 있다. 지금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다.
인사동을 규제하니 풍선효과로 인근 익선동과 북촌, 서촌이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익선동은 한옥마을로 지정됐지만 인사동 보다 규제가 느슨한 편이다. 전통문화 관련 용품이나 한옥 체험 업종 등 권장 용도를 지키면 건폐율 규제를 완화하는 등 혜택을 준다. 전통을 살린 현대 점포로 유동인구를 끌어들인다. 인사동 주민들은 시대에 맞지 않은 문화지구 규제를 풀어달라고 정부와 서울시에 건의했지만 요지부동이라고 안타까워한다. 규제가 만능이 아닌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