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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말, 고독사

[한희철 목사님]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말, 고독사

by 한희철 목사님 2022.02.09

지금껏 살아오며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 있다면, ‘이생망’이라는 말입니다. 말을 줄여서 하는 젊은이들의 습관 때문이겠지요. 일종의 신조어로 ‘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이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젊은이들의 자조적인 말이었지요. 취업이 꿈이 되어버린 서글픈 세대의 깊은 탄식으로 듣는 마음을 멍들게 합니다.
들었던 말 가운데 그중 마음을 서글프게 한 말을 대라면 ‘영끌’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라는 뜻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천정부지, 땀과 수고로는 가닿을 수 없을 만큼 오르는 집값을 두고서 튀어나온 말이었습니다.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야 하는, 그렇게라도 집을 마련하지 않으면 아예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영영 사라지고 만다는 초조함이 담긴 말이었습니다. 세상에,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집을 살 수 있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야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니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말을 대라면 떠오르는 말이 있습니다. ‘고독사’라는 말입니다. 고독사란 말 그대로 고독하게 맞는 죽음으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는 극단선택ㆍ병사 등으로 홀로 임종을 맞고 일정 시간이 흐른 후 시신이 발견되는 죽음을 ‘고독사’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이유가 무엇이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죽고, 시간이 지나 나중에서야 발견되는 죽음이 고독사인 것입니다.
고독사는 연령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데 20대는 우울증이나 강박증, 중장년층은 경제적인 이유, 노년층은 건강의 이유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사람이 혼자 죽는다는 것은 모든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의미,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오래전에 단절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병을 얻어서 투병 중에 돌아가시는 이도 있고, 넘어지거나 다쳐서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지만, 도저히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삶 대신에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쌓인 시간을 생각하면, 그가 견뎌야 했던 절망이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지를 감히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때로 고독사의 현장에는 주인 옆에 반려동물이 함께 죽어있는 경우들도 있다고 합니다. 마음 착한 동물이 주인이 숨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키다가 덩달아 굶어 죽은 경우일 터이지요. 한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지킨 것이 죽은 이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는 것, 결국은 반려동물마저 주인 곁에서 함께 굶어죽는다는 사실은 마음을 아뜩하게 만듭니다.
필시 고독사의 자리에는 켜켜 쌓여가는 고독의 표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 얼굴,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집, 받지 않는 전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상한 고요, 문 앞에 어지럽게 쌓이는 고지서, 연기가 보이지 않는 연통이나 굴뚝, 누군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면 알아차릴 수 있는 징후들이 먼지 쌓이듯 쌓이고만 있었을 것입니다.
가뜩이나 서로의 무관심을 당연시하게 만드는 코로나 팬데믹의 시간, 그럴수록 세심한 관심은 더욱 필요합니다. 관심의 끈이 끊어질 때, 고독사의 걸음은 결국 나를 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