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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상 작가님] 나를 만나러 가는 길

[권영상 작가님] 나를 만나러 가는 길

by 권영상 작가님 2022.02.11

오랜만에 그곳에 가고 싶다.
그곳에 가려면 남한산성 길을 타야 한다. 남한산성에서 하남시로 가는 동문을 빠져나오면 주차장 겸 휴게소가 나오고 그쯤에서 우회전을 하면 그곳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 끝엔 내 마음이 가고 싶어 하는 조그마한 음식점이 있다. 나는 가끔 나에게 친구처럼 잘 대해 주고 싶을 때면 차를 몰아 남한산성 길에 들어서곤 했다.
집에서 차로 간다면 40여 분 거리.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여도 생각난다고 대뜸 가지는 곳이 아니다. 아무리 가깝다 해도 한번 나가려면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아 쉽게 나서지 못한다. 내일 가자고 하면 내일 문득 다른 일이 나서고, 주말에 가자고 하면 그런 날엔 필시 바깥 일이 생긴다. 밥 한 끼 먹으러 혼자 떠나는 일에도 얽히고설킨 관계를 탁 끊어내지 않고 떠나는 건 어렵다.
날 위해 내가 내게 밥 한 끼 사주러 가는 일도 그렇게 힘들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가는 날은 마치 정든 사람을 찾아가는 기분이다. 거기 산중에 홀로 피는 하늘말나리를 보러 가거나 초롱꽃을 보러 가는 것 같은 그런 설레임이 있다. 그 설레임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려고 나는 그 집과는 조금 먼 큰길 옆 휴게소에 차를 세운다.
그러고는 걷는다. 산자락 빈 데를 헤쳐 조금씩 만들어놓은 누군가의 텃밭에는 상추와 쑥갓이 크고, 개울엔 올챙이가 자란다. 나는 개울둑을 또박또박 걷는다. 봄볕 아래에 나와 있는 것들을 하나라도 놓칠까 봐 찬찬히 살피며 걷는다. 물가엔 미나리가 파랗다. 둑엔 소루쟁이가 뾰족한 잎을 낸다. 바람이 좀만 불어도 고들빼기 꽃들이 헤살짓는다. 봄쑥이 살이 찐다. 토끼풀 고마리가 개울둑을 초록으로 덮는다.
나는 하나하나 꽃을 세거나, 돌멩이마저 하나하나 세듯이 걷는다.
이쯤에서 끝난 둑길은 떡갈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간다.
봄은 봄이다. 아무리 따가워도 햇볕이 싫지 않다. 떡갈나무가 가지마다 도톰한 속잎을 피운다. 지난해에 떠나간 새들이 돌아와 짝을 찾는다. 4월이 깊어가면 멀리서 짝을 부르던 새들도 가까이 다가앉아 서로 깃을 골라주거나 부리를 부딪친다.
떡갈나무 숲길에서 차 한 대가 빠져나온다.
차 말고는 나처럼 걸어가는 이도 있다. 길가에 이정표처럼 듬성듬성 피는 조팝꽃을 따라가다가 높은 돌담을 지나면 바로 그 집이 내가 찾아가는 집이다.
거기 들러 볕이 잘 드는 창호문 방에 앉아 음식을 시키고, 나는 나랑 음식이 나올 때를 기다린다. 노란 햇살이 아늑하게 창호문에 든다. 그 문에 새들 날아가는 그림자가 얼핏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창호문 너머 바로 아래에 골짝물이 흐르나 보다. 나보다 내 귀가 먼저 그 소리에 갸웃한다. 창호문을 다르르 열어본다. 새 한 마리가 홀짝 날아간다. 새가 앉았던 자리에 원추리 새움이 트고, 산물소리만 혼자 남아 재갈댄다.
그 집에서 먹는 점심이 좋은 까닭이 여기 있다. 여럿이라면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고,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잠들었던 내 몸의 감각을 파릇하게 살려낼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나랑 단둘이 이런 데서 호젓하게 먹는 음식만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
나는 그런 행복을 맛보기 위해 지금 그 집을 찾아간다. 오래 정을 쌓으며 살아온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은 조금 멀어도 좋다. 겨울이라면 겨울대로 좋다. 나를 만나고 오면 내가 뿌듯하다. 내가 마치 내게 술 한 잔 사주는 친한 형 같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