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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매장이냐, 화장이냐

[이규섭 시인님] 매장이냐, 화장이냐

by 이규섭 시인님 2022.02.11

인도 사람들이 ‘강가(Gangga)’라고 부르는 갠지스강은 생과 사의 경계가 사라지고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힌두교인들은 하늘에 있던 갠지스강이 시바 신(힌두교의 신)의 몸을 타고 땅으로 흘러내렸다고 믿는다. 힌두교인들은 천국으로 흐른다고 믿는 갠지스강을 ‘어머니의 강’이자 ‘성스러운 강’으로 여긴다. 죽은 뒤 화장되어 갠지스강에 뿌려지는 것이 생애 최대의 소망이다. 바라나시를 순례하여 갠지스강에 죄를 씻고 영혼을 구제받는 것이 소원이다.
갠지스강과 화장터가 내려다보이는 ‘무크티바완 호텔’엔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투숙한다. 부자가 아니면 엄두조차 못 낸다. 최소한의 숙박 설비만 갖춘 객실 12개를 운영한다. 두 주일 내 죽지 않으면 체크아웃 당한다. 일반 호스피텔과 달리 의사나 간호사, 의약품도 없다. 기도해 줄 성직자만 상주한다.
갠지스강 화장터를 보며 무채색의 사념에 빠져들던 것이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나이 탓인가, 내가 죽으면 매장할까 화장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왔다. 가족장 터를 장만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모셨다. 젊었을 적엔 해마다 사초와 벌초를 하며 산소 관리에 정성을 쏟았다. 잔디는 왕성한 잡초의 기세에 꺾여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다. 기세등등한 풀은 새뜨기와 바랭이다. 새뜨기풀은 드러난 줄기보다 땅속줄기가 더 길다. 길게 뻗어 마디마다 새롭게 줄기가 돋는다. 뿌리째 뽑으려 들면 마디가 톡톡 잘려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바랭이풀도 마디마다 뿌리가 내리고 날 선 이파리에 손이 베이기 일쑤다.
봄에 사초를 한 뒤 가을에 벌초를 가면 바랭이풀과 억새 등이 얽히고설키어 잡초들의 무도회장 같다. 귀침초(鬼針草)라고도 하는 도깨비풀은 갈고리 같은 털이 옷에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성가시다. 벌초만 해서는 풀이 죽지 않는다. 잔디만 살고 잡초만 죽인다는 제초제를 뿌려도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은 꺾이지 않는다. 어떤 해는 봉분을 헐고 새로 만든 뒤 잔디를 빼곡히 심어도 잡초는 그 틈새를 용케도 비집고 올라온다.
몇 해에 걸쳐 잡초와의 전쟁이 얼추 마무리 된뒤 상석을 마련했다. 후손들이 알아보기 쉽게 한글로 썼다. 정성껏 돌보던 산소를 나이가 들면서 소원해지기 시작한 것은 해마다 벌초를 해주는 사람이 생기고부터다. 묘지 앞 과수원 농사를 동네 주민에게 도지(賭只) 대신 벌초를 해주는 조건으로 맡겼다. 사과나무가 많지도 않거니와 명절 때 사과 선물을 받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해왔다. 죽은 뒤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한 줌 재로 남고 싶지 않기에 매장을 선호했다. 부모님 산소 아래쪽에 묻히게 되면 묘비명 하나 남기고 싶었다. 나이 들면 생각도 세태를 따르게 된다. 나도 부모님 산소 벌초를 남에게 의존하고 있는데 자식들이 벌초를 제대로 하겠는가. 고심 끝에 설 차례상을 물린 뒤 아들에게 화장하라고 구두 유언을 남겼다. “벌초를 하겠다”고 하지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육신의 흔적 보다 살아온 날들의 흔적을 문자로나마 남길 수 있으니 족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