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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그림자: 즐거움과 괴로움의 변증법

[강판권 교수님] 그림자: 즐거움과 괴로움의 변증법

by 강판권 교수님 2022.02.14

즐거움과 괴로움은 그림자와 같다. 즐거움과 괴로움은 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는 오미크론 확산으로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2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는 인류에게 유사 이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국민은 각자 나름대로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러나 나름의 방법을 찾지 못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민 각자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문제는 국가나 지자체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코로나19가 사라지면 현재의 고통도 동시에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희망은 언제나 현실을 딛고서야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고통이 코로나19가 사라진다고 해서 동시에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현재의 고통이 모두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닐 뿐 아니라,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통은 언제나 현재의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나무의 삶을 관찰하면 즐거움과 괴로움이 그림자와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무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고통을 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도 나무의 삶과 다르지 않다. 삶에서 고통의 순간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그 순간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은 고통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괴로움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괴로움 속에 즐거움이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그림자는 실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존재해야만 그림자가 탄생한다. 즐거움과 괴로움도 같은 이치다. 즐거움 속에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 속에 즐거움이 숨어 있다. 따라서 괴로움과 즐거움 속에 각각 즐거움과 괴로움이 함께 있다는 생각의 전환만으로도 각자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다. 이 같은 생각은 곧 『반야심경』이나 『화엄경』에서 언급한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과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과 같은 것이다.
코로나19는 인간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일상은 곧 즐거움과 괴로움의 연속이다. 따라서 코로나19는 인류에게 고통만 주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도 제공하고 있다. 일상을 한층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깨달음의 순간을 자주 경험해야 한다. 코로나19는 그 어느 때보다 일상에서 깨달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아직 인류는 코로나19가 던지는 경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심지어 거부하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매일 고통의 순간을 맞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이 괴로움 속에 내재한다는 논리가 공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스스로 깨닫지 않는 한 자신의 괴로움을 온전히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