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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박사님]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김민정 박사님]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by 김민정 박사님 2022.02.21

무엇이 만져질까, 내 삶을 미분하면
응어리 너무 많아 움찔하는 양미간에
퇴화된 꿈의 고갱이/ 풍경으로 울고 있다

산벚꽃 바라보다 산벚꽃이 되는 봄날
노루잠 눈을 뜨고 열반경을 좔좔 왼다
날마다 드나들었는지/ 문지방 닳아 있다

옹두리 다듬으면 무슨 빛깔 무늬 될까
흩어진 햇살들이 실눈을 뜨는 시간
천년 더 공명할 몸짓/ 잠언으로 스며든다
- 김석인,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전문

영주 부석사에 가면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무량수전이 있다. 이 밖에도 배흘림기둥을 볼 수 있는 곳은 많다. 흘림기둥은 기둥 위아래의 지름을 달리하는 것을 말하며 모양에 따라 배흘림기둥과 민흘림기둥으로 나뉜다.
배흘림기둥은 기둥 하부에서 1/3지점이 가장 굵고 위아래로 갈수록 얇아지는 곡선적인 흘림을 갖는 기둥을 말한다. 민흘림기둥은 기둥 하부가 기둥 상부보다 굵은 사선 흘림을 갖는 기둥을 말한다. 대개 배흘림기둥은 원기둥이 많고 민흘림기둥은 사모기둥이 많다. 기둥에 배흘림을 두는 것은 구조상의 안정과 착시현상을 교정하기 위한 심미적인 착상에서 나온 수업이라고 한다.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전건물에서도 배흘림기둥을 사용했는데, 이를 엔타시스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건축도에서 배흘림기둥이 묘사되어 있어 열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다고 하며 조선말까지 이어진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건물 중에 고려시대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또 조선시대의 무위사 극락전, 화엄사 대웅전 등과 조선시대 대부분의 정전건물에서 나타나는데 이 중에서 강릉 객사문이 배흘림 정도가 가장 강하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목조건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쌍봉사 철감선사부도(858년)에서 강한 배흘림기둥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조선시대보다는 그 이전 건축에서 흘림을 강하게 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또 팔작지붕보다 맞배지붕에서 흘림이 강하다고 한다.
시인은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무엇이 만져질까, 내 삶을 미분하면/ 응어리 너무 많아 움찔하는 양미간에/ 퇴화된 꿈의 고갱이/ 풍경으로 울고 있다”고 한다. 배흘림기둥을 만지며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다. 배흘림기둥을 자기 자신인 듯 동일화를 하고 있다.
그 배흘림기둥 안에 “산벚꽃 바라보다 산벚꽃이 되는 봄날/ 노루잠 눈을 뜨고 열반경을 좔좔 왼다/ 날마다 드나들었는지/ 문지방 닳아 있다” 한다. 무엇이 자신 안을 그렇게 드나들었을까? 꽃일까, 바람일까, 수많은 잡념일까…. 독자로 하여 상상의 폭을 넓히는 부분이다. 자고로 좋은 작품이란 독자에게 상상력을 키우게 하는 공간을 두어야 한다. 세 수다 초장에 의문을 두고 풀어나가는 형식이라 독자로 하여 궁금증을 유발한다.
“옹두리 다듬으면 무슨 빛깔 무늬 될까/ 흩어진 햇살들이 실눈을 뜨는 시간/ 천년 더 공명할 몸짓/ 잠언으로 스며든다”는 표현 속에는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며 어떤 무늬로 남을까를 생각하는 모습을 본다.
시인은 어떤 시를 남겨, 어떻게 후대 문인들과 공명共鳴하며 평가를 받을 것인가, 정치가는 또 후대의 국민들에게 어떻게 공명共鳴하며 평가를 받을 것인가. 지혜를 가지고 현명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역사는 후대가 평가하니까, 그것을 염두에 두고 생활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