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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1등 지상주의’ 벗어날 때

[이규섭 시인님] ‘1등 지상주의’ 벗어날 때

by 이규섭 시인님 2022.02.25

‘눈과 얼음의 축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지난 20일 막을 내렸다. 개막전부터 코로나19 확산과 신장위구르와 홍콩 등에서의 인권 침해에 항의하는 서구의 ‘외교 보이콧’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2008년 하계올림픽 이후 14년 만에 베이징에서 열린 올림픽은 파란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서는 지난 4일 개막식에서 중앙민족대학 56개 민족 대표 대학생을 포함해 176명의 인민 대표가 참가한 개최국 국기 입장식이 논란이 됐다. 당시 조선족 대표의 치마저고리 차림을 두고 국내에서 ‘한복공정’ 여론이 제기되면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해외에서는 최종 성화 주자가 논란이 됐다. 최종 주자로 중국의 인권 탄압을 받고 있는 신장위구르 자치구 출신의 스키 선수와 한족 노르딕 복합 선수가 성화대에 올랐는데 외교 보이콧에 대한 반발로 풀이됐다.
경기 운영도 엉망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쇼트트랙에서 보여준 노골적인 중국 밀어주기는 전 세계의 눈총을 받았다. 중국은 2000m 혼성계주 준결승에서 선수들의 터치가 이뤄지지 않아 실격 처리됐어야 했지만 외려 결승에 진출했고 금메달까지 차지했다. 스키점프에서는 선수들의 유니폼이 헐렁하다는 이유만으로 우승후보로 꼽혔던 선수들이 연이어 실격됐고 스노보드 역시 오심이 속출해 참가국의 항의를 받았다.
경기 여건도 최악이었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의 경우 ‘빙질’이 대회 기간 내내 문제가 됐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최악의 얼음 위에서 힘겹게 레이스를 펼쳐야 했다. 스키, 스노보드 등 다른 종목도 사정은 비슷했다. 자연 눈이 아닌 100% 인공눈으로 이뤄진 환경에서 정상적인 경기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러시아 올림픽위원회(ROC) 여자 피겨선수 카밀라 발리예바(16)의 약물 논란은 엉터리 대회의 백미였다. 불과 2개월 전 도핑테스트에 적발된 선수를 올림픽 경기에 뛰게 했다.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중국 국내적으로 정치적 목적은 달성했으나 국제적으로 중국의 대외 이미지 제고 측면에서는 실패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쑹루정(宋魯鄭) 푸단대 중국연구소 연구원은 “코로나19와 외교 보이콧을 뚫고 중국의 힘과 제도의 유효함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면서도 “중국에 대한 서방의 관점을 바꾸지 못했고 위기감은 증가했으며 동서 경쟁 역시 격렬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시상식 때 메달리스트들에게 나눠준 마스코트다. 자이언트 판다를 형상화한 ‘빙둔둔(氷墩墩)’을 금은동 수상자를 구분하지 않은 것이 인상 깊었다. ‘빙’은 얼음을 뜻하고 순수함과 강인함을 상징한다. ‘둔둔’은 활기차다는 의미이며 어린이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이 승패에만 집착했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 흐뭇했다. 메달 색깔에 연연하지 않고 환한 미소를 보내는 게 아름다웠다. 은메달 동메달은 패배가 아니라 또 다른 승리의 상징으로 평가받았다. 태극기를 활짝 펼쳤던 빙속의 차민규 선수와 쇼트트랙 대표팀의 은메달 세리머니는 잔잔한 감동을 안겨 줬다. 이를 계기로 금메달에 집착하며 울고 웃는 ‘1등 지상주의’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