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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스님] 이 세상, ‘최고’와 ‘제일’

[정운 스님] 이 세상, ‘최고’와 ‘제일’

by 정운 스님 2022.03.08

십여 년 전에 중국 사찰을 오랜 기간 순례한 적이 있다. 이때 그 순례했던 곳과 사찰을 기행문으로 작성해 출판하였다. 당시 원고를 쓸 때, 그 지역 소개나 사찰 연혁에 대해 정확한 전거를 들어야 했는데, 늘 그 현지에서 얻은 자료를 활용했다.
그런데 원고를 작성할 때마다 묘한 것을 발견했다. 중국은 어느 지역을 가든 혹 어느 사찰이든 간에 설명서에 ‘제일第一’의 풍경구, ‘천하’에서 가장 큰 산, ‘최고’의 큰 사찰 등 ‘제일’이나 ‘최고’가 붙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당시 문장을 인용하면서 필자는 중국 사람들이 조금 뻥이 세고, 지나친 자기 과욕과 기만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중국인들이 ‘제일이니’, ‘최고이니’를 붙인 것에 해석이 달라졌다. 어느 지역이든 최고로 멋진 곳이며, 어느 사찰이든 제일의 지상낙원이라고 했던 점에 긍정하게 되었다.
이와 부합하는 스님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 때, 유명한 승려 반산보적은 행각하는 중에 우연히 시장을 지나쳤다. 마침 그때, 반산스님이 정육점 앞을 지나는 중에 손님과 상인이 물건을 갖고 흥정하고 있었다. 손님이 주인에게 말했다.
“이 고기 가운데서 최고로 맛있는 부위를 주세요.”
“어느 부위인들 최상품 아닌 곳이 있겠습니까?”
스님은 상인의 이 말을 듣고 깨달았다고 한다. 이런 논리를 바꿔 말하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 자신의 나라가 가장 선진국이요, 어떤 사람이든 그 부모에게는 최고로 소중한 존재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군들 최상품 아닌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이북에 소재하는 금강산은 명칭이 다양하다. 봄에 가니, 그 산에 꽃이 만발한 것이 마치 수놓은 것처럼 화려해서 ‘금강산’이라고 불렀다. 또 여름에 가보니, 봄ㆍ겨울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녹음이 우거진 것이 최고로 좋아 ‘봉래산蓬萊山’이라고 불렀다. 또 가을에 가보니, 여름ㆍ겨울과는 비교될 수 없는 절묘한 단풍에 ‘풍악산楓嶽山’이라고 불렀다. 또 겨울에 그 산에 가보니, 이파리도 없고 꽃도 없는 헐벗은 기암괴석의 산체가 뼈처럼 드러나 있어 ‘개골산皆骨山’이라고 불렀다. 필자는 금강산의 여러 명칭에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혀를 찰 정도로 감탄했다. 어느 시기, 어느 장소이든 멋지고 훌륭하지 않은 것은 없는 법이다.
<대지>의 작가 펄벅 여사가 80세가 되던 해에 어느 기자가 물었다.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펄벅은 10년 전인 70세였다고 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70세가 되었을 때 인생에 필요한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필자는 펄벅의 글을 읽으면서 100% 공감되지 않는다. 펄벅에게 90세에 질문했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했을까? 사람마다 인생관과 가치관이 다르지만, ‘인생에서 어느 시기인들 소중하지 않은 시기는 없다는 것’,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무 멀리보지 말자. 바로 그대 발밑의 그 현재, 시간과 공간은 인생의 마지막 지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인생의 어느 시기인들 소중하지 않은 때가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