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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꽃바람 났네

[이규섭 시인님] 꽃바람 났네

by 이규섭 시인님 2022.03.11

보소! 자네도 들었는가?/ 기어이 아랫말 매화년이 바람이 났다네// 고추당초 보다 매운 겨울살이를/ 잘 견딘다 싶더만 남녁에서 온 수상한 바람넘이/ 귓가에 속삭댕께 안 넘어갈 재주가 있당가?// 아이고~ 말도 마소! 어디 매화년 뿐이것소/ 봄에 피는 꽃년들은 모조리 궁딩이를 들썩 대는디// 아랫말은 난리가 났당께요/ 키만 삐쩡큰 목련부터 대그빡 피도 안마른/ 제비꽃 년들 까정 난리도 아녀라// 워매 워매~ 쩌그 진달래 년 주딩이 좀보소?/ 삘겋게 루즈까정 칠했네 워째야 쓰까이~// 참말로 수상한 시절이여/ 여그 저그 온 천지가 난리도 아니구만// 그려~ 워쩔수 없제 잡는다고 되것어/ 말린다고 되것어/ 암만 고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안혀라/ 보소~ 시방이라고 있을 때가 아니랑게/ 바람난 꽃년들 밴질밴질 한 낮짝 이라도/ 귀경하라 믄 우리도 싸게 나가 보드라고. <권나현 시 ‘봄 바람난 년들’ 전문>

질펀한 전라도 사투리와 해학적이고 에로틱한 언어가 농익은 꽃이 된다. 루즈를 바른 봄꽃들이 궁딩이를 들썩이며 상춘객을 유혹하는 풍광이 판화처럼 선명하다.
경칩(驚蟄)과 춘분(春分) 절기가 든 3월은 봄꽃들이 앞다퉈 꽃망울을 터트린다. 이맘때면 남도의 구례와 광양으로 달려갔다. 구례 산동면 일대는 샛노란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어 마음까지 노랗게 물들인다. 꽃 사이를 누비다 갈증이 나면 지리산 언저리에서 채취한 고로쇠 수액을 마신다. 활력이 뼈 속까지 짜릿하게 스며든다. ‘골리수(骨利水)’라 불리는 고로쇠는 겨우내 움츠렸던 심신의 활력수다.
구례에서 광양으로 향하는 861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매화가 화사하게 웃으며 벌나비를 유혹한다. 백운산 삼박재 기슭은 백설을 뿌려 놓은 듯 하얗다. 밤나무를 베어내고 매실나무를 심어 일군 청매실농원엔 일찍 피어나는 올매화, 늦게 피는 넘매화, 60년 노목도 뒤질세라 솜사탕만 한 꽃송이를 뿜어낸다. 매실 명인 홍쌍리 여사는 마당에 놓인 2,000여 개의 장독대 사이를 누비며 매실 된장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눈길을 멀리 던지면 섬진강 푸른 물과 하얀 모래사장, 녹색의 대나무 숲이 삼색 조화를 이뤄 한 폭의 강변 수채화를 펼쳐놓는다.
이른 봄 앞다퉈 피는 야생화는 경기도 용인 한택식물원에서 만날 수 있다. 연보랏빛 꽃을 피워 올린 얼레지 군락은 보랏빛 설렘이다. 토종 꽃 치곤 화사하여 꽃 멀미가 난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노루귀도 보랏빛 날개를 편다. 흥흥거리는 봄바람의 대세는 바람꽃이다. 나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등 종류도 많고 생김새도 다양하다. 꽃 색깔은 모두 희다. 바람꽃 중에도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게 너도바람꽃이다. 10㎝ 안팎의 작은 키에 손톱만 한 흰 꽃이 앙증맞다. 태어나면서부터 허리 굽은 할미꽃은 할머니를 닮아 정겹다. 예전에 들판에 지천으로 피었으나 사라지면서 이곳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
눈을 헤치고 올라온 샛노란 복수초는 봄의 전령이다. 원일초, 설련화, 얼음새꽃으로도 불리며 봄을 가장 먼저 노래한다. 복(福)과 장수(長壽)를 의미하듯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