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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님] 진짜 큰 사람은 따로 있다

[한희철 목사님] 진짜 큰 사람은 따로 있다

by 한희철 목사님 2022.03.15

마음에 두고 있는 가르침 중에 ‘기자불립 과자불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자>에 나오는 말로, ‘까치발을 하고서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가랑이를 한껏 벌려서는 자기 길을 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발뒤꿈치를 들면 남보다 돋보이겠지만,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랑이를 한껏 벌려 걸으면 당장이야 남보다 앞서겠지만, 오래 걸을 수는 없습니다. 잠시 통할지는 몰라도 오래 갈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진짜 큰 사람이 따로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존경과 고마운 마음으로 그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23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나온 후 의사 생활을 하던 그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12월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서울 한남동에 정착한 그는 <장의원>이라는 개인 병원을 열고 30여 년간 일했습니다. 병원을 열 당시만 해도 한남동은 서울의 변두리, 그는 스스로를 한남동 주민들의 주치의처럼 생각하며 밤늦게까지도 진료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살림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진료비를 받지 않았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위해서는 왕진도 열심히 다녔다고 하니, 이웃을 살피는 따뜻한 마음이 눈에 보일 듯 선합니다.
성실히 살면서 번 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어 한 번 산 옷은 10년 이상 입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집에서 생일잔치를 열어본 적도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남모르게 거액의 기부를 이어온 그는 평생 모은 전 재산 113억 원을 한동대학교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모든 일이 뒤늦게 알려지게 된 것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처럼 자신의 생전엔 기부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떠나온 고향 황해도에 학교와 교회를 짓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 꿈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싶지만, 통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한동대에 기부를 결정했습니다. ‘배워서 남 주자’는 학교 표어에 감명을 받아 ‘벌어서 남 주자’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하는데, 말에 그치지 않고 실천에 옮긴 것이지요. 아버지의 결정에 세 아들도 흔쾌하게 동의를 했다니, 한 가정을 채우고 있는 고귀한 정신이 큰 향기로 전해집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얼마 전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장응복 선생님입니다. 그의 이름 뒤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기에 망설임이 없는 것은, 그런 분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스승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을 하겠다고 말로 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좋은 일을 해야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단한 일을 할 것처럼 큰 소리를 치는 사람보다는 말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훨씬 더 크고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불의한 선택을 하며 큰소리를 치는 이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아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세상에는 진짜 큰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강물은 스스로 길을 내며 바다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