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섭 시인님] ‘우보천리’의 지혜
[이규섭 시인님] ‘우보천리’의 지혜
by 이규섭 시인님 2022.03.18
‘산불 뒤 울린 워낭소리… 노부부가 풀어준 소 20마리, 다 돌아왔다’
경북 울진 산불 피해 지역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기사를 읽고 13년 전에 본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떠올랐다. 농부와 소의 교감을 수묵화처럼 그렸다. 영화의 배경은 이번 산불 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울진과 인접한 경북 봉화다. 최 노인에게 소 누렁이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최고의 농기구이며 자가용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도 워낭소리는 잘 듣는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데도 매일 쇠꼴을 베고 쇠죽을 써 소를 먹인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이지만 최 노인과 누렁이가 함께 한 세월은 30년이다.
소의 수명이 다 되어간다는 수의사의 말을 들은 뒤 소가 힘들어할까 봐 수레를 타지 않고 땔감을 지게에 지고 불편한 걸음으로 소와 함께 언덕을 오르는 모습은 명장면이다. 소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달은 최 노인은 소를 평생 옥죄었을 고뚜레와 워낭을 풀어준다.
초점을 잃은 소의 커다란 눈망울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노부부는 소를 땅에 묻고 무덤 양편에 앉아 허공을 응시한다. 독립영화로 관객 295만 명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노부부가 살던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산정마을)엔 ‘워낭소리 공원’이 조성돼 한때 찾는 이들의 발길이 잦았다. 수레를 타고 가는 최 노인과 누렁이의 조형물 등 영화 이야기를 담았다. 그 뒤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2013년)와 할머니(2019년)는 우총(牛塚ㆍ소 무덤) 위쪽에 나란히 묻혔다.
산불이 난 울진읍 정림 2리 야산 인근에 사는 칠순의 노부부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휴대전화벨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읍사무소 공무원이 화급한 목소리로 “산불이 코앞까지 다가왔으니 대피하라”고 전한다. 부부는 화마가 집을 덮칠 기세라 옷가지만 걸치고 나왔다. 대문을 나서려다 소들이 마음에 걸려 우사로 달려가 키우던 소 20마리를 황급히 풀어줬다. “야들아, 여기 있으면 죽는다. 빨리 나가거라” 외쳤더니 소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소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 불길을 피해 울진군이 마련한 대피소에 도착한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공무원이 잠을 깨우지 않았으면 큰 화를 당했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날이 밝자 집에 와보니 집은 폭격을 맞은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마당에 세워둔 트랙터는 불에 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한 밤중에 풀어준 소의 행방이 궁금하여 우사로 갔다. 타다 남은 우사 터에 소들이 돌아와 있는 게 아닌가. “하나, 둘, 셋…” 어미 소 14마리와 송아지 6마리가 모두 살아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 집도 우사도 모두 타버려 살길이 막막했는데 제집이라고 찾아온 소들이 기특했고, 뛸 듯이 기뻤다고 한다.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게 됐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울진ㆍ삼척 산불은 9일 만에 막대한 피해를 내고 진화됐다. 하루아침에 집과 재산을 화마에 날린 이재민들의 참담함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피해 복구와 산림생태계 복원은 더딜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일수록 천리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자세로 재난을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경북 울진 산불 피해 지역에서 일어난 기적 같은 기사를 읽고 13년 전에 본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떠올랐다. 농부와 소의 교감을 수묵화처럼 그렸다. 영화의 배경은 이번 산불 재난 지역으로 선포된 울진과 인접한 경북 봉화다. 최 노인에게 소 누렁이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최고의 농기구이며 자가용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도 워낭소리는 잘 듣는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데도 매일 쇠꼴을 베고 쇠죽을 써 소를 먹인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이지만 최 노인과 누렁이가 함께 한 세월은 30년이다.
소의 수명이 다 되어간다는 수의사의 말을 들은 뒤 소가 힘들어할까 봐 수레를 타지 않고 땔감을 지게에 지고 불편한 걸음으로 소와 함께 언덕을 오르는 모습은 명장면이다. 소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달은 최 노인은 소를 평생 옥죄었을 고뚜레와 워낭을 풀어준다.
초점을 잃은 소의 커다란 눈망울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노부부는 소를 땅에 묻고 무덤 양편에 앉아 허공을 응시한다. 독립영화로 관객 295만 명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노부부가 살던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산정마을)엔 ‘워낭소리 공원’이 조성돼 한때 찾는 이들의 발길이 잦았다. 수레를 타고 가는 최 노인과 누렁이의 조형물 등 영화 이야기를 담았다. 그 뒤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2013년)와 할머니(2019년)는 우총(牛塚ㆍ소 무덤) 위쪽에 나란히 묻혔다.
산불이 난 울진읍 정림 2리 야산 인근에 사는 칠순의 노부부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휴대전화벨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읍사무소 공무원이 화급한 목소리로 “산불이 코앞까지 다가왔으니 대피하라”고 전한다. 부부는 화마가 집을 덮칠 기세라 옷가지만 걸치고 나왔다. 대문을 나서려다 소들이 마음에 걸려 우사로 달려가 키우던 소 20마리를 황급히 풀어줬다. “야들아, 여기 있으면 죽는다. 빨리 나가거라” 외쳤더니 소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소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 불길을 피해 울진군이 마련한 대피소에 도착한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 공무원이 잠을 깨우지 않았으면 큰 화를 당했을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날이 밝자 집에 와보니 집은 폭격을 맞은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마당에 세워둔 트랙터는 불에 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한 밤중에 풀어준 소의 행방이 궁금하여 우사로 갔다. 타다 남은 우사 터에 소들이 돌아와 있는 게 아닌가. “하나, 둘, 셋…” 어미 소 14마리와 송아지 6마리가 모두 살아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 집도 우사도 모두 타버려 살길이 막막했는데 제집이라고 찾아온 소들이 기특했고, 뛸 듯이 기뻤다고 한다.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게 됐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울진ㆍ삼척 산불은 9일 만에 막대한 피해를 내고 진화됐다. 하루아침에 집과 재산을 화마에 날린 이재민들의 참담함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피해 복구와 산림생태계 복원은 더딜 수밖에 없다. 이런 때일수록 천리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자세로 재난을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