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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은 대표님] 봄에 봄

[김재은 대표님] 봄에 봄

by 김재은 대표님 2022.03.22

여의도로 가는 버스 안, 중년의 사내가 봄비 내리는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다.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있는지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있다. 아마도 희로애락의 인생살이에서 오늘은 희(喜) 아니면 락(樂)이 삶에 깃들었나 보다. 창밖도 봄이요, 버스 안도 봄이다.
우수 경칩을 지나 춘분 즈음, 이제 누가 뭐라 해도 봄이다. 물론 앞으로도 꽃샘추위가 몇 차례 찾아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부추길 것이다. 그럼에도 거역할 수 없는 봄이다. 얼마 전 다녀온 통도사의 봄이 그랬고, 이제 막 물오른 고향 텃밭의 들꽃들이 대지를 뚫고 움텄으니 누가 그 봄을 막을 것인가.
그런데 봄을 왜 봄이라 했을까. 그 숱한 세월 속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60이 되어서야 호기심인 양 내비치는 이 사내의 궁금증을 풀어주어야겠다.
『두시언해(杜詩諺解)』를 보면, 한시의 ‘뛰어오를 약(躍)’을 ‘봄놀다’로 번역하고 있다. 문맥상 현재의 ‘뛰놀다’의 의미로 이해해도 될 듯하다. 그러니 봄은 ‘뛰고 움직이는 계절’이라는 의미를 지녔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다른 이야기까지 포함해 보면, 결국 봄은 ‘따뜻해져서 사물들이 뛰고 움직이기 시작하고 새롭게 바라보는 계절’이라고 정리해 보면 좋겠다. 그래서 봄이 Spring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자연이다. 대지에서 싹이 움트는 것을 보고, 겨우내 말라있던 나뭇가지에서 매화, 산수유, 숱한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볼 때, 그 바라봄이 바로 봄이다.
그러고 보니 봄을 바라보는 내가 봄이렷다. 세상의 작은 변화 하나에도 눈길을 주는 것, 그런 마음과 자세에서 우리의 봄은 온다. 그대로 봄, 어울려 봄, 지켜 봄이 뒤엉켜 봄은 무르익는다.
그런데 이 위대하고 눈부신 봄이 앞에 있음에도 우리는 봄을 자꾸 멀리한다. 부모가 자식을, 부부가 서로에게,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향해 그대로 ‘지켜 봄’이 아니라 시비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며 비난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 봄날이 오려면 그 열쇠는 바로 ‘봄’이 쥐고 있다. 믿음으로 지켜 봄, 따뜻한 눈길로 바라 봄, 진정으로 인정하고 응원해 봄…
참지 못하고 기어이 한 마디를 해서 상대를 언짢게 하면 오는 봄도 그대로 가버린다. 내 앞의 그 사람이 겨울인데 어찌 나만 봄을 맞을 수 있을까.
그가 입고 있는 옷이나 그가 가지고 있는 돈, 그럴싸한 권력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보고, 진심을 보고(헤아리고), 진짜 가치를 보는 것, 이 새봄에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들이다. 그러니 봄에 제대로, 그대로 봄은 봄을 맞이하는 가장 지혜로운 모습이 아닐까. 봄(spring) 말고 봄(seeing)이 희망이요, 진짜 봄이다.
한 시인의 봄 한 조각을 선물한다. 힘든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왔다. 울며 씨뿌리며, 다시 힘내라 시작하는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