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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 교수님] 윤회매와 차 한잔

[강판권 교수님] 윤회매와 차 한잔

by 강판권 교수님 2022.03.28

장미과 갈잎떨기나무 매화는 전통시대 중국과 한국의 성리학자들이 가장 사랑한 나무였다. 식물을 인격에 비유한 사군자(四君子)는 성리학자들이 매화를 사랑한 결정적인 근거이다. 매화의 자료를 집대성한 남송대 범성대(范成大, 1126-1193)의 『매보(梅譜)』도 성리학자들이 매화를 사랑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성리학자들이 매화를 사랑한 핵심 이유는 겨울에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삶의 태도 때문이었다. 성리학자들은 매화의 그러한 태도를 절개라 생각했다.
매화의 절개를 강조한 성리학자들은 아주 많지만, 조선시대 신흠(申欽, 1566-1628)의 「야언(野言)」중 ‘매화는 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구절은 유명하다. 그러나 매화는 향기를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매향은 벌을 유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고 지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향기를 팔아서 지조를 지키는 것이다. 지조는 자신의 본성을 잃지 않는 것이지 단순히 향기를 파는 여부가 아니다.
성리학자 중에는 매화를 화분에 심은 ‘매화분’을 만들어 매화를 즐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은 ‘매화분에 물을 주거라’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매화를 사랑한 사람이다. 그러나 실내 매화분은 실외에 사는 매화보다 긴 기간 동안 매화를 즐길 수 있지만, 일 년 동안 매화의 꽃을 감상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성리학자들 중에는 1년 동안 매화를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도 했다. 조선시대 실학자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만든 ‘윤회매(輪回梅)’는 매화를 평생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윤회매는 이덕무의 「윤회매십전(輪回梅十箋)」에 자세하다. 이 작품에는 만드는 방식 10가지를 그림까지 곁들이고, 이덕무 자신과 그와 교유한 유득공(柳得恭, 1748-1807) 및 박제가(朴齊家, 1750-1805)의 시를 첨부했다. 윤회매는 밀랍으로 만든 매화이다. 밀랍은 벌이 꽃을 채취하여 만든 것이다. 이덕무는 이러한 밀랍으로 매화꽃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 만든 것을 윤회매라고 붙인 이유는 벌이 꽃을 배양해서 만든 밀랍으로 다시 매화를 만든 것이 마치 윤회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덕무는 윤회매를 만들어 자신의 책상 위에 두고 감상했다. 때론 이아탕주인(爾雅宕主人) 김사희(金思羲)처럼 이덕무가 만든 윤회매를 사는 자도 있었다.
매화분를 감상하는 데도 적지 않은 비용과 정성이 필요하지만, 윤회매는 매화분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정성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종이로 매화의 꽃을 만들고, 노루 털 같은 것으로 꽃 수술을 만들고, 자른 매화 가지를 밀랍에 담가서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화분과 윤회매는 성리학자들의 매화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지만, 한 존재에 대한 독점이기도 하다. 성리학자들의 매화에 대한 사랑은 매화 그 자체가 아니라 ‘꽃’이라는 특정 부분에 대한 사랑이자 매화의 본성을 거스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차인(茶人)이었던 이덕무는 자신이 만든 윤회매와 함께 차를 즐겨 마셨다. 사랑하는 눈빛으로 윤회매를 바라보면서 차를 마신 이덕무의 일상을 생각하면, 한 잔의 차도 누구와 마시는가에 따라 격도 다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