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 목사님] 시(詩)로 하는 시위(示威)
[한희철 목사님] 시(詩)로 하는 시위(示威)
by 한희철 목사님 2022.04.13
서울에 살면서도 지하철을 타는 일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차를 운전하여 다녀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동네 바로 앞에서 타는 버스를 이용하곤 했으니까요.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가려면 지하철역까지 일삼아 걸어가 두어 번 갈아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으니까요.
아는 분이 소개해 준 치과병원으로 가는 길은 지하철이 편했습니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은 운동 삼아 걷는다 생각하기로 했고, 한 번만 갈아타면 바로 병원 앞이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치과병원이 있는 건물의 주차장이 협소하여 차를 운전하여 가는 길이 오히려 불편하게 여겨졌던 것도 이유였지요.
차를 운전하는 대신 지하철을 타면 많은 것들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주변의 풍경도 새롭게 바라보고,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바라볼 수가 있지요. 빠르게 지나가던 세상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여유를 즐기려는 마음으로 허름한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길을 나섭니다. 가방 안에 몇 가지 챙겨 넣는 물건이 있습니다. 그중 빠뜨리지 않는 것이 두어 권의 책과 노트, 그리고 천으로 만든 필통입니다. 필통 안에는 몇 가지 필기구가 담겨 있는데, 필기구 중에는 색연필이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기 위함입니다.
가방에 챙겨 넣는 책은 대개가 시집입니다. 지하철에서는 시를 읽고 생각에 잠기기가 좋습니다. 때로는 너무 시시해서, 때로는 너무 난해해서 이래저래 시는 우리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좋은 노랫말을 좋아하면서도, 시는 마음으로부터 낯설고 멀어지고 말았지요.
시를 챙겨 읽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혼자서 시위를 하는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보면 승객들의 모습은 거개가 같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봅니다.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는 뭘 했지 싶게, 그런 모습은 당연한 풍경처럼 자리를 잡았지요.
핸드폰을 통해 드라마나 영상을 보는 이도 있고, 열심히 문자를 나누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모두가 외롭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를 처음 찾은 어린 왕자가 산꼭대기에 올라 “나는 외로워” 외쳤을 때 그 소리가 메아리로 퍼져갔던 것처럼, 각자 핸드폰을 붙잡고 거기에 빠져 있는 모습은 외로움을 감추기 위한 노력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문 일입니다. 신문을 읽는 모습 또한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핸드폰 일색인 지하철 한복판에서 시집을 읽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낯선 일입니다. 아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면서도 마치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듯한 어색한 느낌에 빠지고는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집을 꺼내 읽으며 혼자서 시위를 합니다. 누가 봐도 그만, 무시해도 그만입니다. 시집에서 퍼져나간 시인의 향기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물들고, 문득 바라보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게 보인다면 시위는 성공적이니까요. 그러면서도 은근히 바라는 일이 있습니다. 혼자서 하는 시위에 누군가 동참하면 좋겠다는, 슬며시 야무진 꿈을 꾼답니다.
아는 분이 소개해 준 치과병원으로 가는 길은 지하철이 편했습니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은 운동 삼아 걷는다 생각하기로 했고, 한 번만 갈아타면 바로 병원 앞이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치과병원이 있는 건물의 주차장이 협소하여 차를 운전하여 가는 길이 오히려 불편하게 여겨졌던 것도 이유였지요.
차를 운전하는 대신 지하철을 타면 많은 것들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주변의 풍경도 새롭게 바라보고,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바라볼 수가 있지요. 빠르게 지나가던 세상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여유를 즐기려는 마음으로 허름한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길을 나섭니다. 가방 안에 몇 가지 챙겨 넣는 물건이 있습니다. 그중 빠뜨리지 않는 것이 두어 권의 책과 노트, 그리고 천으로 만든 필통입니다. 필통 안에는 몇 가지 필기구가 담겨 있는데, 필기구 중에는 색연필이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긋기 위함입니다.
가방에 챙겨 넣는 책은 대개가 시집입니다. 지하철에서는 시를 읽고 생각에 잠기기가 좋습니다. 때로는 너무 시시해서, 때로는 너무 난해해서 이래저래 시는 우리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좋은 노랫말을 좋아하면서도, 시는 마음으로부터 낯설고 멀어지고 말았지요.
시를 챙겨 읽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혼자서 시위를 하는 것입니다. 지하철을 타보면 승객들의 모습은 거개가 같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봅니다.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는 뭘 했지 싶게, 그런 모습은 당연한 풍경처럼 자리를 잡았지요.
핸드폰을 통해 드라마나 영상을 보는 이도 있고, 열심히 문자를 나누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모두가 외롭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구를 처음 찾은 어린 왕자가 산꼭대기에 올라 “나는 외로워” 외쳤을 때 그 소리가 메아리로 퍼져갔던 것처럼, 각자 핸드폰을 붙잡고 거기에 빠져 있는 모습은 외로움을 감추기 위한 노력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문 일입니다. 신문을 읽는 모습 또한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핸드폰 일색인 지하철 한복판에서 시집을 읽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낯선 일입니다. 아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면서도 마치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듯한 어색한 느낌에 빠지고는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집을 꺼내 읽으며 혼자서 시위를 합니다. 누가 봐도 그만, 무시해도 그만입니다. 시집에서 퍼져나간 시인의 향기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물들고, 문득 바라보는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게 보인다면 시위는 성공적이니까요. 그러면서도 은근히 바라는 일이 있습니다. 혼자서 하는 시위에 누군가 동참하면 좋겠다는, 슬며시 야무진 꿈을 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