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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시인님] ‘세계 등대’로 등극한 호미곶 등대

[이규섭 시인님] ‘세계 등대’로 등극한 호미곶 등대

by 이규섭 시인님 2022.04.15

경북 포항 호미곶 등대가 세계의 등대로 등극했다. 국제항로표지협회(IALA)가 선정하는 ‘올해의 세계등대유산’에 뽑혔다. IALA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등대를 보존하고 항로표지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2019년부터 매년 1곳의 등대를 선정해왔다. 한국을 비롯한 90개 회원국으로부터 신청받은 후보지 가운데 건축적인 특성과 보존 상태, 예술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공식 발표는 6월 덴마크에서 열리는 제75회 항로표지협회 이사회에서 이뤄진다.
호미곶 등대는 1908년 12월 20일 점등한 이후 114년째 바닷길을 밝힌다. 등대는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후 외부를 콘크리트와 석회로 마감했다. 순백의 미감과 위로 올라갈수록 날렵하게 비상하는 형태로 신고전주의 건축미학을 구현한 명품 건축물이다. 지진 위험이 큰 포항에 위치하면서도 벽면에 균열하나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2000년도 해돋이 취재 때 호미곶 등대의 내부를 살펴보는 기회를 누렸다. 등대의 출입문과 창문은 고대 그리스 신전 건축의 멋을 차용했다. 등탑 내부는 장중하면서도 기품이 넘친다. 1층으로 들어가면 작은 회랑과 창문, 등탑 내부 출입문이 나온다. 6층으로 된 등대 내부의 각 층 천장에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오얏꽃을 철판으로 가리고 자신들의 국화 문장을 새겼다. 해방이 되어 철판을 떼어내자 아무도 몰랐던 오얏꽃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조립식 주물 철제로 아찔하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나선형 층계는 화려하면서도 고전적이다. 6층 철제 계단은 고난의 108계단이다. 꼭대기 층 팔각 바닥의 고급 나뭇결은 윤기가 흐른다. 호미곶 영일만 일대의 푸른 바다에 가슴이 탁 트인다. 떨림과 설렘이 교차하는 장쾌한 풍경이다. 등명기의 밝기는 30만 촉광. 12초 단위로 회전하며 40㎞까지 빛을 쏘아댄다. 고동소리는 300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폭풍이 일거나 안개가 짙게 끼면 전파와 음파로도 뱃길을 안내한다.
호미곶 등대는 지금까지 일본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고종이 고용한 영국 건축가 존 레지널드 하딩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건축사학자이자 등대 연구자인 김종헌 배재대 교수는 등대의 건립 주체에 대한 새로운 자료가 발견됐다며 제시했다. 호머 헐버트가 창간한 영문 잡지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 1905년 11월 호에 “호미곶(Cape Clonard)을 등대 부지로 선정했고, 20초마다 2번 섬광을 비추는 방식으로 설계됐다”라는 기록이 있다.
김 교수는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듬해 등대 부설 업무가 완전히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대한제국이 고용한 영국의 건축가 하딩이 그동안 진행한 등대 부설 업무들을 정리한 기록”이라고 한다. 즉 호미곶 등대는 일본이 아니라 하딩의 주도로 이미 건립이 준비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하딩은 대한제국 황궁인 덕수궁 석조전을 설계했으며 오얏꽃 문양을 넣은 것도 닮았다. 호미곶 등대의 진면목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