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오피니언

오피니언

[김민정 박사님] 바람여행

[김민정 박사님] 바람여행

by 김민정 박사님 2022.04.18

만사를 접어 두고 발길 닿는 낮은 길로
바람은 길이 많아 나도 늘 그렇다
아득한 그 꿈속으로 가만 젖어 떠난다.

일상이 나를 깨워 세상 밖에 눈을 돌려
바람이 앉은 자리 따라가며 앉으면서
설레는 가슴을 안고 새가 되어도 좋겠다.

바람이 부는 대로 구름이 가는 대로
내 삶의 끈을 풀어 흐뭇한 유목으로
또 다른 눈이 뜨여서/ 떠나고 있다 늘 그렇듯이.
- 배종관 「바람여행」 전문

삶을 사는 것은 일종의 여행이다. 우리는 그때그때 목적지를 향해 간다고 생각하지만, 인생의 종착지는 다 같다고 볼 수 있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 그것이 인생이며 그 인생을 사는 동안 바람여행처럼 발길 닿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인 것이다. ‘바람은 길이 많아 나도 늘 그렇다/ 아득한 그 꿈속으로 가만 젖어 떠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바람을 따라가는 인생, 그래서 바람이 앉은 자리 따라가며 앉기도 하면서, 또 새처럼 설레는 가슴을 안기도 하면서 그렇게 삶을 살아간다. 바람이 부는 대로 구름이 가는 대로 유유자적한 삶, 유목의 삶을 살아간다.
많은 시인들이 바람에 관한 시를 썼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남쪽에서 부는 세찬 바람은/ 내 책을 펼쳤다가 다시 닫는다./ 세찬 물결은 조각조각 부서져/ 바위로부터 활기찬 모습으로 뛰쳐나온다./ 날아가자, 치열하게 눈부신 책장들이여!/ 그리고 부숴라, 나의 파도여!/ 뛰어가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전문.
“바람 속에 장미가 숨고/ 바람 속에 불이 깃들다.// 바람에 별과 바다가 씻기우고/ 푸른 묏부리와 나래가 솟다.// 바람은 음악의 호수/ 바람은 좋은 알리움!// 오롯한 사랑과 진리가 바람에 옥좌를 고이고/ 커다란 하나와 영원히 펴고 날다.” - 정지용, 「바람」 전문.
“바람 부는 날, 나는 많은 생각과 말들을 온통 세상으로 풀어 놓았다. 내가 풀어 놓은 그 많은 생각과 말들은 바람이 터준 풀밭으로 가서 꽃이 되었다. 하늘도 땅도 모두 꽃 색깔이니 누구에게나 말을 걸고 싶은 날, 바람 부는 날, 누구에게나 말을 걸어 합궁하고 싶은 날, 꽃 피는 날, 꽃 지는 날, 온몸이 용수철로 솟아올라 뜨겁게 꽃씨 열리니 꽃씨 하나 날아가다 멈추는 곳, 꽃씨 하나 날아가다 고개 드는 곳, 오! 저것이야, 내 아직 살아보지 못한 불같은 인생.” - 한기팔 「바람 부는 날 – 한 야생화에게」 전문.
바람처럼 그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모든 곳을 가볍게 통과할 수 있는 자유로운 바람이라면 참 좋겠다. 봄에는 봄의 숨결로 부는 바람이 되어 모든 꽃망울을 스치고 지나가며 봄이 왔음을 알려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하고 꽃의 향기를 멀리까지 운반하기도 하며, 여름이면 하늬바람이 되어 시원한 바람을 보내어 더위에 지친 사람들과 사물들을 위로하여 지친 모든 사물들에게 다시 생기를 찾게 하고, 가을이면 소슬한 가을바람이 되어 오곡백과가 순조롭게 익게 하고, 겨울에는 겨울바람으로 인내와 강인함을 배우게 하면서 그렇게 계절을 순환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바람여행」 처럼 바람을 따라, 무리하지 않고 순리대로 사는 삶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