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장군바위 '외돌개'
외로운 장군바위 '외돌개'
by 제주교차로 김동일 객원기자 2014.06.05
역사와 전설이 깃들어 있어 더욱 아름다운 바위
외돌개는 서귀포시 삼매봉 남쪽 기슭 바닷가 고석포에 서있는 바위 이름이기도 하고, 외돌개 바위가 있는 서귀포시 서홍동 791번지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돌개의 이름을 살펴보니 외돌개, 외돌괴가 혼용되어 쓰이고 있었다. 어는 것이 맞는 이름인가 했더니 외돌개, 외돌괴라는 두 개의 이름이 백과사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공식 명칭으로는 외돌개가 사용되고 있었다.
외돌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닷가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커다란 바위 덩어리이다. 높이는 약 20m로 100만 년 전에 바다 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졌다. 애초에 외돌개와 주변에 있는 바위는 한 몸통이었다가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로 주변의 바위가 떨어져 나가면서 지금의 외돌개가 형성 되었다.
외돌개는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제주도 남쪽 해변가 지역에서도 특히 풍광이 빼어난 삼매봉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가는 것처럼 외돌개보다는 주변의 풍광에 더욱 매료되는 곳이 외돌개 지역이다.
외돌개는 제주시의 용두암과 더불어 남북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서 제주관광의 대들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외돌개에는 여전히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대부분 왁자지껄한 중국 관광객들이다. 외돌개에서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했던 것도 중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한 요소인 모양이다. 대장금 촬영지 간판 앞에서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외돌개는 서귀포시 삼매봉 남쪽 기슭 바닷가 고석포에 서있는 바위 이름이기도 하고, 외돌개 바위가 있는 서귀포시 서홍동 791번지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외돌개의 이름을 살펴보니 외돌개, 외돌괴가 혼용되어 쓰이고 있었다. 어는 것이 맞는 이름인가 했더니 외돌개, 외돌괴라는 두 개의 이름이 백과사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공식 명칭으로는 외돌개가 사용되고 있었다.
외돌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닷가에 홀로 외로이 서있는 커다란 바위 덩어리이다. 높이는 약 20m로 100만 년 전에 바다 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졌다. 애초에 외돌개와 주변에 있는 바위는 한 몸통이었다가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로 주변의 바위가 떨어져 나가면서 지금의 외돌개가 형성 되었다.
외돌개는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제주도 남쪽 해변가 지역에서도 특히 풍광이 빼어난 삼매봉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가는 것처럼 외돌개보다는 주변의 풍광에 더욱 매료되는 곳이 외돌개 지역이다.
외돌개는 제주시의 용두암과 더불어 남북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서 제주관광의 대들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외돌개에는 여전히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대부분 왁자지껄한 중국 관광객들이다. 외돌개에서 드라마 대장금을 촬영했던 것도 중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한 요소인 모양이다. 대장금 촬영지 간판 앞에서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외돌개는 머리에 작은 소나무 몇 그루를 이고 육지와 떨어져 그 싱그러운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있다. 기암괴석의 절벽과 비취빛의 바다에서 외돌개는 범섬을 배경으로 서 있다. 외돌개는 고기잡이 나간 할아버지를 ㄱ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어버린 할머니의 애절한 전설이 깃들여 있다고 한다. 그래서 외돌개는 '할망바위'라고도 불린다. 세월의 풍파는 참으로 희안하게 외돌개를 깎아 만들어 외돌개는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외돌개를 왼편에서 보면 바위가 되어버린 할머니의 눈망울과 콧등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한다. 입을 벌린 모습은 할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던 모습이었으며, 외돌개 바로 아래에 물 위에 떠있는 듯한 바위는 할머니가 망부석이 된 후 할아버지 시신이 떠올라 돌이 된 것이라고 한다.
외돌개 주변의 바위에는 각자 이름을 가지고 있다. 외돌개 아래에 있는 둥그런 연못 모양의 바다는 선녀탕으로 불리고, 외돌개와 오른편 육지를 이어주는 바위는 폭풍의 언덕, 외돌개 왼쪽의 건너편 바다에 튀어나와 있는 바위는 소머리를 닮았다하여 우두암이라 불린다.
서기 1372년 고려 공민왕 때는 제주에서 목호(牧胡)의 난이 일어났다. 명나라에 말을 보내라는 명령에 반발하여 원나라 출신 목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최영 장군이 목호를 토벌하러 제주에 들어왔고, 목호들은 끝까지 항전하면서 최후에는 서귀포 범섬에서 농성했다. 범섬은 외돌개 바로 앞에 있는 섬이었다. 최영 장군은 외돌개를 거대한 장수로 치장시켜 반란군들의 기를 꺾었고, 범섬은 목호의 난의 종착지가 되었다. 그 후 외돌개는 '장군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바다에 외로이 서 있어서 외돌개이고, 할아버지를 그리는 망부석이라 할망바위이기도 하고, 장군처럼 장대하게 버티고 있어서 장군바위로도 불리는 외돌개는 어느 이름에도 어울려 보인다. 외돌개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역사와 전설이 깃들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외돌개 옆으로는 올레길 중 제일 아름답다는 올레길 7코스가 지나간다. 외돌개도 좋지만 올레길에 마음을 빼앗겨도 좋은 곳이 외돌개이다.
외돌개 주변의 바위에는 각자 이름을 가지고 있다. 외돌개 아래에 있는 둥그런 연못 모양의 바다는 선녀탕으로 불리고, 외돌개와 오른편 육지를 이어주는 바위는 폭풍의 언덕, 외돌개 왼쪽의 건너편 바다에 튀어나와 있는 바위는 소머리를 닮았다하여 우두암이라 불린다.
서기 1372년 고려 공민왕 때는 제주에서 목호(牧胡)의 난이 일어났다. 명나라에 말을 보내라는 명령에 반발하여 원나라 출신 목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최영 장군이 목호를 토벌하러 제주에 들어왔고, 목호들은 끝까지 항전하면서 최후에는 서귀포 범섬에서 농성했다. 범섬은 외돌개 바로 앞에 있는 섬이었다. 최영 장군은 외돌개를 거대한 장수로 치장시켜 반란군들의 기를 꺾었고, 범섬은 목호의 난의 종착지가 되었다. 그 후 외돌개는 '장군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바다에 외로이 서 있어서 외돌개이고, 할아버지를 그리는 망부석이라 할망바위이기도 하고, 장군처럼 장대하게 버티고 있어서 장군바위로도 불리는 외돌개는 어느 이름에도 어울려 보인다. 외돌개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역사와 전설이 깃들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외돌개 옆으로는 올레길 중 제일 아름답다는 올레길 7코스가 지나간다. 외돌개도 좋지만 올레길에 마음을 빼앗겨도 좋은 곳이 외돌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