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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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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은 마음을 바친 수행공덕(修行功德)

사경은 마음을 바친 수행공덕(修行功德)

by 청주교차로 2014.07.08

한국전통사경예술회 초암 김시운 회장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고, 누구나 부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불교에서의 가르침이다. 사경은 공덕을 쌓기 위한 수행의 방편으로 행하기도 한다.
새벽부터 화엄경의 글자 하나하나를 세필에 금가루를 묻혀 부처님 말씀을 새겨 넣고 또 넣으면 어느 덧 창밖은 붉은 노을이 진다. 흔히 ‘화엄경’은 떠오르는 아침 해에 비유하고, ‘법화경’을 장엄한 낙조를 남기고 사라지는 저녁 해에 비유하기도 했던가. 초암 김시운(65)선생이 하루에 6~7시간, 2년3개월에 걸쳐 완성한 오백나한도가 생명을 얻어 살아난다. 자세히 살펴보면 오백 나한의 표정은 각각 다르다. 세상의 온갖 희노애락(喜怒哀樂)이 그곳에 오롯이 담겨져 있었다.
BBS청주불교방송이 주최하는 ‘2014직지 선서화 대전’이 1일 개막해 오는 7일까지 청주예술의전당 소1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고장 출신 초암 김시운(65, 한국전통사경예술회 회장)선생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선생의 작품 ‘묘법연화경’과 ‘오백나한도’, ‘금강반야바라밀경’이 충북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게 된다.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선승들의 글씨와 그림들로 숲을 이뤄 향기를 품는 그곳에서 초암 선생을 만났다.
“너 평생 이거로 먹고 살아라”
■일반인들에게 사경은 생소하다. 사경이 무엇인가?
▷김시운 회장 : “사경은 쉽게 말해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담은 경전을 손으로 베껴 쓰는 일이다. 사경은 온 마음을 바쳐서 하는 경건한 수행이기도 하다. 끈기와 인내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초기의 사경 은 불교경전을 서사(書寫)하는 것을 말한다. 사경은 첫째, 불경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둘째는 승려가 독송하고 연구하기 위함이며 셋째는 서사의 공덕을 위한 목적에서 제작되었다. 사경은 불경을 널리 보급시키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372년에 전진의 왕 부견이 순도를 파견하여 불상과 함께 불경을 보내왔는데 이때 사경이 유래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의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권43이다. 이 사경은 장식경 또는 공덕경의 의미를 보여주는 최초의 작품으로 2축 중 1축만 공개되어 국보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사경의 재료는 서예와 다른가.
▷김시운 회장 : “서예에서는 붓과 벼루, 먹과 종이가 필요하지만 사경은 먹 대신 주로 금가루와 은가루를 아교나 어교(민어 부레로 만든 풀)에 섞어 사용한다. 그리고 한지 대신 감지와 순지(닥지)를 사용하는데 도침(搗砧, 종이의 질감을 좋게 하려고 두드리는 작업)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경은 순금이나 은을 녹여 아교나 어교를 섞어 사용하기 때문에 습도가 높아야 잘 굳지 않는다. 그래서 실내온도와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적어도 최소한 섭씨 26도 이상은 유지되어야 한다.
요즈음과 같은 장마철이 최적의 환경이다. 겨울철에는 아무리 따뜻하게 해도 작업하기 힘들다. 한 여름에도 절대로 에어컨을 켤 수 없다. 그만큼 사경은 온도에 민감하다. 그래도 추운 겨울보다 여름이 작업하기 좋다.”
하루 7시간, 3년의 세월이 농축된 경전
■사경에 입문하게 된 동기와 누구로부터 배웠는지?
▷김시운 회장 : “보은에서 서예학원을 했다. 86년도 가을 주말마다 속리산 법주사로 등산을 했다. 그런데 어느 금요일 밤, 잠을 자는데 꿈을 꿨다. 꿈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할아버지 한분이 커다란 보따리를 갖고 오더니 갑자기 보따리를 내게 내 던지더라. 그러면서 ‘너 평생 이거로 먹고 살아라.’라고 하더라. 다음날, 법주사 말사인 관음암을 지나치는데 노스님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분이 작은 책자를 주면서 ‘처사님, 이것으로 연습해 보세요.’라면 주었다. 받고 보니 금강경을 친필로 5,314자를 직접 쓴 사경이었다. 그래서 ‘나를 아시냐?’고 물었더니 ‘지난밤 꿈에서 나를 만났다’고 하더라. 그리고 며칠 후, 다시 관음암을 찾아갔더니 노스님은 벌서 입적을 하셨다. 그런 인연으로 사경에 입문하게 되었다. 사경을 아는 스님들에게 물어물어 사경의 흔적들을 찾아 배우기 시작했다. 홀로 고문서를 뒤지기도 하고, 박물관 관장에게 찾아가서 사경의 재료, 쓰는 법 등을 배웠다.”
■사경을 하는 마음가짐은 남다를 것 같다.
▷김시운 회장 : “사경이란 경전을 옮겨 쓰는 행위지만 선정(禪定)속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정성스레 옮기면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수행의 한 방편이기도 하다. 진리는 청정(淸定), 그 자체이기 때문에 사경에 있어서도 마음의 청정이 필요하며 또한 몸의 청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도구와 재료의 청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청정한 가운데 조화를 이룰 때 사경은 비로소 수행이 된다. 또한 ‘욕심, 성냄, 어리석음’과 같은 세 가지를 없애야 한다. 그래서 사경작품은 삼청(三淸)과 삼무(三無)수행의 결정체라고 부른다. 사경은 짐승의 털로 만든 지구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붓을 사용한다. 머리로는 하늘의 정기를 내려 받고 다리로는 땅의 정기를 끌어올려 몸과 조화를 이룬 후, 삼매(三昧)속에서 그 기운을 곧게 세워진 원추형의 붓끝을 통해 종이에 순일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경은 작업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잡념도 없이 평안하다. 작업하는 동안은 정말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국보 제196호 신라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의 사성기에 등장하는 사경에 관한 마음은 엄중하며 성스럽다.
‘사경을 하는 법은 닥나무 뿌리에 향수를 뿌려 생장시키며 닥나무가 다 자란 연후에는 닥 껍질을 벗기는 자나 연마하는 자나 종이를 만드는 자나 사경을 하는 자나 표지와 변상도를 그리는 자, 경심을 만드는 자, 심부름하는 자, 모두 보살계를 받아야 하고 재식(齋食, 음식을 청결히 가려 먹음)해야 하며, 위의 사람들이 만약 대소변을 보거나 누워 자거나 음식을 먹거나 했을 때에는 향수로 목욕을 한 연후라야 사경하는 곳에 나아갈 수 있다.’
사경에 참여한 이들이 얼마나 성스럽게 임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이런 지극정성의 바탕위에 고려시대 ‘금자대장경’, ‘은자대장경’, ‘목판대장경’과 같은 사경의 꽃을 피워냈던 것이다.

■취재 ㅣ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사진 ㅣ 이승민 기자 iuns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