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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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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잡는 열쇠수리공

도둑잡는 열쇠수리공

by 청주교차로 이승민 2014.07.18

지키고, 따고, 열어준다

“도둑이야!”
소매치기를 당한 여인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길거리에서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보복이 두려웠던 것이다. 버스에서 막 내리던 최돈섭(당시 24세)씨는 본능적으로 검은 핸드백을 움켜쥐고 달아나는 세 명의 사내를 뒤쫓았다. 한참을 쫓아가 3명과 격투를 벌이던 중, 맞은편에서 오던 또 다른 사내 3명에게 칼을 맞고 쓰러졌다. 그로부터 최돈섭씨가 의식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돌보지 않은 대가로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진 그에게 남겨진 것은 엄청난 병원비와 핸드백을 잃어버리고 도움을 청했던 연민숙(당시 19세)씨의 엽서 한 장뿐이었다. 엽서에 내용은 간단했지만, 감동적이었다.
‘그때 참 고마웠어요’
고마웠다는 그 한마디의 말이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지난 1984년도의 일이었다.

나는 동네 파수꾼
그런 사건이 있은 뒤, 약 30년이 지났다. 그는 열쇠업체를 운영하면서 무려 80여명의 절도범을 검거하거나, 검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 당시 최기문 경찰청장으로부터 명예 경찰 경장으로 위촉받기도 했고 2006년에는 제4회 충북치안대상에서 ‘자랑스러운 시민상’을 받기도 했다. 절도범 80여명을 검거한 그의 직업은 특이하게도 우천열쇠 대표다. 그의 매장은 움직이는 승합차다. 차량에 길게 뺀 안테나엔 언제나 붉은 깃발을 꽂고 다닌다. 그가 움직이지 않을 때는 새로 조성된 금천동 공원 옆 공터에 주차를 하고 영업활동을 한다.
“경찰도 아닌 시민이 80여명의 절도범을 잡았는데, 어떤 노하우라도 있습니까?”
“글쎄요. 묘하게 감이라는 것이 있어요. 영업하러 차를 몰고 가다보면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죠. 우선 가는 방향이 일정하지 않고 좌우를 살핍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인내를 갖고 미행을 합니다. 그러다 범행을 목격하는 순간 달려가 붙잡는 겁니다”
최 대표는 모든 운동에 만능이며, 합기도 유단자다. 얼마 전에도 오토바이 절도범 2명을 검거해 용암지구대에 넘겼다. 그의 영업이 끝나고 어둠이 내리면, 다시 그만의 업무를 위해 동네를 돌아본다. 새벽까지 스스로 순찰하는 것이다. 금천동, 용암동, 탑동 일대의 동네 파수꾼을 자청한다.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최대표가 반가웠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반팔 티셔츠 아래로 문신이 보인다. 대나무 숲에서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 문신이었다. 눈빛이 살아있었다.
“웬 문신인가요?”
“아, 이거는 사연이 있어요. 몇 달 전에 제가 잡았던 절도범에게서 협박 전화가 걸려왔어요. 겁나지는 않았지만, 무척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성형외과 원장님이 문신을 해보라고 권유하시더군요. 자신이 문신을 해주면 그런 협박전화는 안 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반신반의했는데 신기하게 문신을 하자마자, 협박전화가 뚝 그쳤어요” 최대표가 호탕하게 웃는다.

도둑 잡는 사람이 아닌 이웃을 지키는 사람
그가 주로 머물렀던 금천동 공터에는 과거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였고 각종 생활쓰레기 투기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가 머무는 동안만큼은 청소년들의 탈선이나 불법 쓰레기 투척은 현저하게 감소했다고 한다.
현재는 새롭게 금천 ‘쇠내울 공원’으로 거듭나 쾌적한 환경으로 변했다. 금천동 공원 벤치에 앉아 그의 무용담을 듣다보면 어느 사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80여 차례의 절도범 검거인데, 어떻게 사연이 없겠는가. 이제 곧 여름 휴가철로 접어든다. 빈 집 털이범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에게 방지법을 물어보았다.
“흔히 아파트의 경우 L자형 손잡이가 달린 현관 출입문이 많아요. 그런 손잡이는 손으로 힘껏 잡아 비틀면 금방 열려요. 가장 안전한 것은 번호 키 열쇠입니다. 번호 키는 통째로 뜯지 않는 한, 절대로 열 수 없죠”라며 “특히 아파트 현관문 안쪽에 있는 안전걸쇠를 절대로 믿지 말아야 합니다. 왜 안전걸쇠라고 이름 붙였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안전걸쇠가 아니라 그것은 위험걸쇠입니다. 안전걸쇠를 걸어 놨어도 보통의 남자가 힘껏 문을 열어젖히면 쉽게 떨어져 버립니다”
낯선 사람이 방문했을 때, 안전걸쇠를 채웠다고 문을 살짝 열고 대화하는 것은 위험천만이라는 것. 가급적 현관인터폰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한다.
최 대표가 살아가면서 아쉬웠던 순간 중 하나는 2003년 최기문 경찰청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으면서 경찰로 특채 될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아쉽게도 그때 당시 경찰공무원의 나이제한(18세~40세)으로 경찰이 되고픈 소망을 접어야만 했다.
“제 아들 중에 한 녀석이라도 경찰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경찰도 아닌 사람이 무슨 도둑을 잡는다고 설치느냐’며 저를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도둑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저의 이웃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제가 정식 경찰이었다면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취재.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 사진. 이승민 기자 iuns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