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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구석구석

우리동네 구석구석 : 사람들 속으로

당신들이 있어 따뜻합니다.

당신들이 있어 따뜻합니다.

by 청주교차로 윤기윤기자 2014.06.04

이른 유월인데 더위는 벌써부터 뜨겁다. 중앙공원의 오후에는 이미 수많은 노인들에게 점령당하고 있었다. 고목이 그늘을 드리우는 곳곳은 은빛 갈대처럼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가득하다.
"커트 하실 분 오세요!"
젊은이가 노인들이 앉아 있는 벤치 사이를 돌며 외친다. 언뜻 미용업이 야외로까지 진출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중앙공원 관리소 앞 등나무는 이미 이 호객행위자(?)들의 고정석이 된지 오래다. 노인들은 젊은이를 따라오기도 하고,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 등나무 벤치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세 줄로 늘어선 등나무 벤치는 자연스럽게 앞쪽 벤치부터 차례로 순서가 된다. 젊은 1명과 아가씨 3명이 익숙한 듯 허리에 작업용 띠를 두르고 은발의 노인 머리를 한차례 쓸어본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쓱쓱' 가위질을 한다. 아래쪽 머리는 소위 '바리깡'으로 익숙하게 올려친다. 이들은 바로 6년 전부터 꾸준히 중앙공원 등나무 벤치에서 노인들을 위한 '미용봉사'를 하는 '에비수 미용봉사회'였다.
미용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직업정신'

머리 커트를 마치고 옷에 묻은 머리카락을 툭툭 털던 정명환(남, 81)씨는 "한두 번은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오래 하긴 힘들어. 이 사람들은 꾸준히 머리를 깎아주거든. 봄, 여름, 가을과 겨울에도 따뜻한 날씨에는 어김없이 이 장소에서 우리 머리를 깎아줬어. 고맙지 뭐."라며 머리를 툭툭 털고 공원 한가운데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앞치마를 둘렀지만, 노인들의 은빛 머리카락은 봉사자들의 검은 티셔츠에 묻어 햇빛에 반짝거린다. 하지만 젊은 미용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늘 휴무임에도 봉사에 참여한 것이다.
에비스 서문점 송주영 헤어디자이너는 "재능봉사의 일환으로 미용 활동을 하지만, 오시는 분들에게 실제 미용실에서와 같이 최대한의 정성을 다해 이발을 해드리려고 노력한다. 봉사활동을 가기 전 날씨가 덥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막상 나와 보니 등나무 그늘아래에서 하니 기분도 남달랐다."라며 "늘 내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으로 머리 손질을 한다.
오히려 어르신들이 머리를 깎으면서 저희들에게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고맙고, 도움이 많이 된다. 앞으로 자주 나와서 할아버지들에게 작은 기쁨을 계속 선물 해드리고 싶어지는 보람찬 하루였다."라고 말한다. 방금 머리를 깎은 노인 한 분이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온다. 한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박카스였다. 냉장고에서 방금 꺼내 왔는지 병마다 물기가 배어 있다. "고마워, 더운데 젊은 사람들이 수고가 많아요."라며 총총히 사라진다. 공짜로 깎은 머리가 못내 마음에 걸렸나보다. 바닥에는 은빛 머리카락이 쌓여간다.
열심히 바닥을 쓸고 있는 사람은 '에비수 커트사랑 봉사회' 요봉열 대표다. 그는 "미용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직업정신'이다. 일하는 것 자체를 즐기고 스스로 그 일에 몰입하게 되면 고객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다. 봉사활동은 그 마음을 담기에 아주 좋은 기회다."라며 "봉사를 하면 할수록 고객에 대한 마음가짐이 변하니 진정한 상생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원한 그늘아래 행복해지는 마음
"괜찮겠어? 좀 그렇지 않아?"
중앙공원으로 어르신들께 미용봉사를 간다고 하니 누군가 그랬다. 하지만 석미애 봉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86세 아버지가 있는데 오히려 편하지. 다 아버지 같은 분들이니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더구나 어렸을 적 어머니도 미용을 하면서 꽃동네로 봉사를 가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늘 따라가곤 했는데 그때부터 '나도 미용을 하게 되면 엄마처럼 봉사를 다닐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석미애 헤어디자이너는 "오늘이 그 시작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봉사를 통해 뿌듯함도 느껴졌다. 아마 오늘 함께한 선생님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직은 어시던트란 직책이지만, 열심히 머리를 깎고 있던 박지영 봉사자도 "봉사활동은 오늘이 처음이다. 어르신들 머리를 잘라드렸는데 처음 나간 봉사라 조금 떨리긴 했지만 커트하다보니 괜찮았다. 오늘 하루는 미용시작 후, 제일 보람찬 하루였다."라고 말한다. 옆에서 함께 어시던트인 김다인 봉사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 친구도 되어드리니 좋아하셨다. 딸 같다는 말에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라고 말한다.
중앙공원 등나무 아래의 정겨운 야외 미용실. 오후 내내 깎아낸 머리카락이 산처럼 쌓였다. 봉사자들의 옷은 온통 하얀 머리카락으로 가득했지만, 얼굴에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오늘 커트한 노인들만 대략 40여명이다.
한편 에비수헤어는 미용봉사뿐만 아니라, 나눔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2014년 5월 19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충북지역본부(본부장 박석란)로부터 '초록우산 나눔현판'을 전달받았다. 나눔 현판은 충북지역의 소외된 아동들을 돕기 위해 소액으로 정기후원을 신청한 후원자들에게 전달하는 현판이다.
에비스헤어 류봉열 대표는 "지역최고의 헤어살롱, 지역봉사, 인간형성, 환경보전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우리 지역에 아이들을 위해 작은 정성을 보태고 싶다. 투명하고 소중하게 사용해주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에비수 헤어봉사/ 청주시 자원봉사센터 043, 국번 없이 1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