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우리동네 구석구석

우리동네 구석구석 : 사람들 속으로

선생님의 은밀한 사생활 '수요일밴드'

선생님의 은밀한 사생활 '수요일밴드'

by 창원교차로 김혜인 2014.07.07

니가 쓰는 칠판 옆에 빨간 호루라기 아직 온기가 있어 너의 느낌이 있어
만지작거리다 나도 모르게 입으로 한번 불어봐도 될까 넌 어떤 느낌일까"
-노래 ‘호루라기’ 中-
"회색 폴로티 입는 게 아니었어 땀에 젖은 내 겨드랑이 검게 되어서 팔을 못 들었어 (중략)
교무실은 틀었던데 행정실도 틀었던데 꼭대기 층 제일 더운데 중앙제어 안 푸는데"
-노래 ‘에어컨 좀’ 中-

어릴 때 생각한 선생님은 교실 안에서 수업하는 ‘선생님’으로서만 그려지지, 교실 바깥의 모습은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고 주위 친구들이 선생님이 됐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으며 그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학교 바깥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학교 바깥에서 조금 특별한 삶을 사는 교사인디밴드 ‘수요일밴드’를 만나봤다.

지난해 4월 첫 결성된 ‘수요일밴드’는 당초 4명이었던 멤버 중 2명이 탈퇴하면서 현재 박대현(33), 이가현(27) 듀엣 체제로 활동하고 있다. 작곡부터 연주, 녹음, 앨범 발매, 홍보까지 직접 발로 뛰는 수요일밴드는 자신들의 직장인 함안 칠서초등학교에서 이 모든 작업을 진행한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한 후 어둠이 내려앉은 조용한 학교는 그들만의 음악적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수요일밴드는 수요일에만 공연한다는 뜻인가요?
가현: 아니요, 수요일은 월,화와 목,금중간에 있잖아요. 저는 그날 수업이 한시간 짧고, 학교에 따라 직원 연수 개념으로배구나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거든요. 저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우리를 되돌아보고 스스로 위하는 날이라는 뜻에서 수요일밴드라고 지었습니다.

-수요일밴드는 어떻게 결성됐나요?

대현: 진주교대 시절부터 밴드하면서 자작곡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칠서초에 부임했고 가현이를 만났죠. 작년 개학날 회식자리에서 취미 이야기가 나왔는데 가현이가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길래 바로 “내가 가수 시켜줄게” 라고 했어요.
가현: 그때 처음에 “이 쌤, 뭐지?” 란 생각부터 들었어요. (웃음)
대현: 그러다가 아는 지인 2명까지 해서 총 4명이서 활동하게 됐는데 7월에 개인사정으로 그 2명이 나가면서, 가현이랑 둘이서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첫 공연은 언제였나요?
대현
: 저희가 자작곡 호루라기 연주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교육청에서 보고 연락이 왔어요. 어떤 연수의 식전 행사에 공연을 좀 해달라고요. 그게 첫 공연이었죠.
가현: 완전 떨렸어요. 1주일 전부터 맹연습하고, 중간중간에 넣을 멘트도 짜고. 그때에 비해 지금은 많이 능숙해졌죠.
-대현 씨는 작곡부터 연주, 녹음, 편집, 홍보 같은 모든 것을 직접 하시는데 대단한 것 같아요가현: 그런 말 들으면 별거 아닌데, 왜 칭찬하지? 이렇게 반응하세요. 자존감이 낮은 거 같아요. (웃음)
대현: 나 정도만 에너지를 쏟으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훌륭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취재를 직접 오시니까 “내가 그 정도 되나?” 이런 생각 들기도 하고. (웃음)

-교사 생활을 담은 재기발랄한 자작곡이 많은데, 주로 영감은 어떻게 얻으시나요?
가현: 저는 곡을 별로 안 썼는데, 거의 제 경험에서 가사를 떠올려요. 그다음에 가사에 어울릴만한 멜로디를 상상하고 그걸 코드로 잡죠. 거의 경험에서 많이 영감을 얻는 편인데, 대현쌤은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네요.
대현: 예를 들어서 백화점에 가서 비싼 구두를 맞춤으로 샀어요, 30만원 짜리. 그런데 좀 불편한 거야. 그래서 슬리퍼를 신었는데 너무 편해! 그러면 ‘슬리퍼가 좋아’라는 노래가 딱 나오는 거죠.
가현: 그럼 ‘ASS 배구화’나 ‘혼자’ 같은 여자 화자의 노래는요?

대현
: ‘혼자’는 노처녀가 나이 먹는 것을 푸념하는 노래인데, 제가 감정이입을 정말 잘해요. 그래서 아는 노처녀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떤 감정인가, 확 느껴져요. 빙의처럼. 그때 곡을 재빨리 쓰죠. 또 ‘NS NGR‘이란 곡은 농심 너구리를 겨냥해서 만든 노래인데 농심 페이스북에 제가 직접 올렸어요. “이런 노래가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라”라고 다른 사람인 척하면서. 그랬더니 농심에서 너구리 세 박스를 보내주더라고요.

-선생님이라는 직업만으로도 바쁠 텐데, 밴드 활동을 이렇게 꾸준히 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대현: 기본적으로는 제가 행복하려고 하는 거죠. 내가 잘하는 걸 보여줌으로써 남들한테 칭찬받고 그럼으로써 얻는 나의 행복이 1차적인 이유고, 그다음에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재밌고 행복했으면 하는 게 2차적인 이유죠. 내가 좋아하는 일 때문에 남들도 즐거워한다면 의미가 있잖아요.
가현: 저도 이하동문입니다.

-교사인디밴드로서의 한계도 있을 것 같은데?
대현: 아무래도 제 감정을 100%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다는 거죠. 남들이 보는 교사라는 직업의 둘레 안에서만 창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단점이 있지만, 대체로 나쁜 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가현: 맞아요. 아무래도 본인도 조금 더 자극적이고 거칠고, 때로는 야한(?) 그런 노래도 쓰고 싶을 텐데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있다 보니까 못 그러시는 거 같아요. 그래도 장점이 더 많아요.
-그렇다면 더 나아가 지역 인디밴드로서의 고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가현: 저는 그냥 인디밴드하는 게 재밌어요. 그런데 창원의 인디밴드들이랑도 알게 되다 보니까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에요. 그렇다 보니 더욱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음악적으로도 노력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죠.
대현: 제가 창원에 있는 인디밴드 12팀을 모아서 ‘창원인디차트’라는 걸 기획해서 만들었어요. 자작곡 한 곡씩 만들어서 그걸 취합한 앨범을 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먹고 사는 문제들이 있다 보니까 앨범 작업이 잘 안돼요. 인디밴드에 훌륭한 애들은 많은데 창원은 밴드로 먹고살기 힘든 시스템이라 앨범 욕심을 낼 수가 없죠. 그래서 앨범보다는 돈을 벌 수 있는 버스킹을 많이 하고,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자작곡보다는 대중이 좋아하는 노래들로 공연하게 되죠. 인디밴드라면 자기만의 색깔을 노래로 풀어나가야 하는데 그게 아쉽습니다.

-수요일밴드의 향후 목표는요?
대현: 우리가 슈퍼스타K 같은 곳에 나갈 것도 아니고, 혹시 나갈거가? (아니요) 나가지 마라. (웃음) 아무튼 대박을 바라고 하는건 아니잖아요. 대박을 바랄 처지도 아니지만. 음악은 계속 저를 기분 좋게 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는 게 제 목적이죠. 앞으로 가현이가 시집가서 아이를 낳더라도 밴드에 복귀할 수 있도록.
가현: 저도 꾸준히 같이 오래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