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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다, 교차로 어르신 장수사진 촬영

다시 시작하다, 교차로 어르신 장수사진 촬영

by 청주교차로 이승민 2014.07.08

‘찾아가는 봉사활동 교차로신문사 어르신 장수사진 찍어드리기’

청주시 내덕1동 주민자치센터
한 마을에 ‘한 번 넘어지면 3년밖에 살지 못하는 고개’가 있었다. 이른바 ‘3년 고개’다. 그 마을에 사는 금슬 좋은 노부부가 있었는데 비록 가난하지만 서로를 위해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이 고개에서 넘어져 시름에 잠기게 된다. 그 사실을 안 할머니도 몹시 슬퍼한다. 하지만 까치가 할머니에게 오래 사는 방법을 말해주었다. 바로 비결은 ‘한 번 넘어지면 3년을 살 수 있으니 수없이 넘어지면 100년도 넘게 살 것’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3년 고개’에 가서 데굴데굴 구르며 좋아했다는 옛날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교차로 ‘장수사진’에도 전설이 있다. 장수사진을 한 번 찍으면 ‘3년을 더 산다.’라는 것이다. 전설 같은 이 말은 사실 ‘희망’이다. 장수사진에 담긴 숨은 의미는 영정사진이다. 하지만 영정사진을 찍어야 되는 노인에게 행복하게 사시길 바라는 교차로의 마음이 바로 ‘장수사진’인 것이다. 지난 6월20일 내덕1동 주민센터에서 펼친 장수사진 행사는 ‘아름다운 사회 건설’이라는 청주교차로의 사훈을 이어가는 희망의 여정인 것이다.

웃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누구나 그렇지만, 막상 사진기 앞에 서면 얼굴이 굳어진다. 사진작가가 구수한 말투로 노인들의 표정을 풀어주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할아버지, 미소 한 번 지어보세요. 더 보기 좋아요.”
대뜸 사진을 찍던 할아버지는 “이거 영정사진인데 웃어야 돼, 말아야 돼?”라고 묻는다. 순간, 사진작가도 스텝도 촬영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노인들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정말 웃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라고 서로 묻고 있는 것이다. 그때 청주교차로 황익주 본부장이 “할아버지 그래도 표정이 행복해 보여야 자손들이 마음이 놓이지요. 인상 쓰면 자식들 마음이 편치 않아요.”라고 하자, 그때서야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떡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장수사진(영정사진)은 어쩌면 자신들을 위한 사진이 아니라, 후손들을 위한 사진이기 때문이다. 장수사진 촬영에 임하는 노인들의 표정과 자세를 살펴보면, 아련히 떠오르는 얼굴이 슬쩍 겹쳐진다. 과거 젊은 시절, 찍었을 결혼사진의 모습이다. 활짝 핀 배꽃 같았던 그분들은 어느덧 세월이 지나면서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주름살이 늘어 이제는 영정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삶과 죽음은 늘 공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옆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이정미(가명, 81)할머니는 “전에 찍어놨던 사진이 너무 낡았어. 그래서 새로 찍으려고. 교차로에서 잘 찍어준다고 하던데.”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자리에 앉아 있는 노인들의 얼굴표정은 다양하다. 사실 그분들의 기억의 창고는 젊은이들보다 크고, 환하다.
세월의 무게로 노쇠해진 육신으로 움직임은 적어졌지만, 그 대신 생각만큼은 오히려 젊은이들보다 깊고 풍부하다. 특히 지나간 시절에 쌓아놓은 추억의 저장고에는 세상의 지혜와 경험이 보석처럼 켜켜이 녹아있지 않던가.
상당구 내덕1동 김천식 동장은 “우리 동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건강 체조, 탁구장 개방, 노래교실 등 10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한다. 이번에 교차로에서 무료 ‘장수사진’촬영을 더불어 해주니 정말 뜻있는 행사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영정사진이 아닌, ‘장수사진’
“처음에 영정사진 찍으러 오시라고 안내하기가 참으로 난감했다. 영정사진이란, 돌아가셨을 때 올려놓는 사진이 아닌가? 아직 살아계신 분께 ‘영정사진’을 찍으러 오시라 말씀드리며 기분 나빠 하실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히 자료를 찾아보니, 지금은 ‘영정사진’이란 말보다 ‘장수사진’이라도 표현하더라. 어둠속에 작은 희망을 본 것 같았다. 장수사진 찍으시고 더 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한다.”
청주 내덕1동 김세아 사회복지담당의 말이다. 그녀는 오시는 어르신마다 일일이 손을 잡으며 촬영장소로 안내했다. 촬영 장소에는 교차로 문화사업본부 전 직원이 동원되어 원활한 행사진행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이 먹은 아들이 끌고 온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신숙자(91, 가명)할머니는 “이왕이면 잘찍고 싶어. 나 죽으면 다들 이 사진보고 날 기억할 것이니까.”라고 말한다. 옆에 함께 앉아있는 한 할머니(74)는 “전에 사진이 너무 낡았어. 새로 찍으려고.”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그 웃음 속에 삶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창밖의 나무들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푸르던 이파리도 여름을 지나 어느 듯 가을이 되면 갈잎으로 바뀌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내릴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매달렸던 나무 밑 둥지에서 썩어 다시 거름이 되어 나무를 기름지게 한다. 우리의 어머니들도 그것처럼 우리의 밑거름이 되어, 세상에 나와 살 수 있도록 해준 것처럼 말이다.
“할머니, 장수사진 한 번 찍을 때마다 3년씩 수명이 연장되는 거 아세요?” 교차로의 한 직원이 농담을 건네자, 며느리와 함께 온 할머니가 말한다. “아이고, 나 어쩌지? 벌써 다섯 번 짼대?”
“아이쿠! 노인네도 주착이지, 너무 많이 찍으면 옆의 며느리는 싫어하는 거 몰라?”
서로 농을 주고받으며 재미있는지 노인들은 폭소를 터트린다. 옆에서 시어머니가 촬영을 마칠 때까지 옷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며느리는 갑자기 죄지은 사람 마냥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장수사진을 노인들은 하나씩, 둘씩 사진을 찍고 돌아갔다.
이날 청주 내덕1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장수사진’을 찍고 가신 노인들은 총 42명이었다. 청주교차로에서는 사진촬영부터 포토샵까지 말끔하게 처리해서 완성된 사진은 고급액자에 넣어 직접 자택까지 배달해 드리는 행사를 꾸준히 지속할 예정이다.

■취재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협찬 및 재능기부 한복 나래혼수방(283-9174), 메이크업 김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