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은 직업, 도예는 취미”
“농악은 직업, 도예는 취미”
by 평택안성교차로 2015.02.04
토담갤러리 연 평택농악 단원 김정아 씨
토담갤러리 연 평택농악 단원 김정아 씨
평택 복창초등학교 앞에서 국악학원을 운영하는 김정아(49·사진) 씨는 평택농악 이수자다. 평택농악보존회 단원으로 연간 100회 국내·외 공연과 후진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도예에 빠져 갤러리를 열었다.
우리 가락 알리기 위해 노력
김정아 씨는 서예, 도예 등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다. 10년 전 우리 국악의 매력에 이끌려 평택농악을 배우게 됐고 농악 단원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
지역 내 상설공연뿐 아니라 국내와 해외 공연 등에 빠짐없이 참가했다. 우리 가락의 전통을 잇기 위해서 제자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국악학원을 열었고 학원 외에도 여러 학교에 다니며 학생들을 지도했다. 전통연희단 신아리를 창단해 대중과의 소통에도 힘썼다.
김씨는 농악에 빠져들수록 공부가 절실해졌다. 단국대 일반대학원 국악학과에 들어가 주경야독 끝에 2011년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이듬해 평택농악 이수자가 되었다. 그를 보고 자란 자녀들도 해금, 피리 등 국악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내 만족을 위해 농악을 배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가락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수많은 공연과 강습을 해왔어요. 한창때는 주민자치센터와 학교 등 11곳에서 지도했죠.”
김씨는 2년 전 앞만 보고 달리는 자신을 되돌아봤다. 그리고 강습을 정리한 후 공연과 농악교육이 활성화되지 않은 지역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하고 싶었던 도예를 시작했다. 그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Bucket List)로 중국어·서예·천연염색 등 10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도예였다”고 말했다.
국악학원 안에 토담갤러리 열어
김씨는 진위면에 있는 미류도예에서 도예를 배웠다. 농악 공연과 강습을 마친 후 매일 오후 8~10시 도자기를 만들었다. 다기와 등잔·접시·항아리 등 수많은 생활도예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도예를 배우는 내내 흙과 유약, 불의 조화가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데 매료됐다”며 “그러면서 깊고 투박한 멋에 깊이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2년 동안 많은 작품을 만들어오면서 완성된 작품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에 진열하게 됐다. 작품성, 실용성이 뛰어나다 보니 지인들로부터 호응을 얻어 지난해 전시장 겸 판매장인 토담갤러리를 열었다.
지금도 농악 공연과 강습이 끝나는 대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김씨. 그는 “농악은 직업이고 도예는 취미”라며 “지금까지는 생활도예 위주로 도자기를 만들었는데 앞으로는 완성도 높은 작품 위주로 도자기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생을 함께하는 벗처럼 오랫동안 농악인으로, 흙 향을 맡으며 도자기를 굽는 도예가로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문의: 665-1400)
우리 가락 알리기 위해 노력
김정아 씨는 서예, 도예 등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다. 10년 전 우리 국악의 매력에 이끌려 평택농악을 배우게 됐고 농악 단원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
지역 내 상설공연뿐 아니라 국내와 해외 공연 등에 빠짐없이 참가했다. 우리 가락의 전통을 잇기 위해서 제자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국악학원을 열었고 학원 외에도 여러 학교에 다니며 학생들을 지도했다. 전통연희단 신아리를 창단해 대중과의 소통에도 힘썼다.
김씨는 농악에 빠져들수록 공부가 절실해졌다. 단국대 일반대학원 국악학과에 들어가 주경야독 끝에 2011년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이듬해 평택농악 이수자가 되었다. 그를 보고 자란 자녀들도 해금, 피리 등 국악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내 만족을 위해 농악을 배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가락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수많은 공연과 강습을 해왔어요. 한창때는 주민자치센터와 학교 등 11곳에서 지도했죠.”
김씨는 2년 전 앞만 보고 달리는 자신을 되돌아봤다. 그리고 강습을 정리한 후 공연과 농악교육이 활성화되지 않은 지역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 하고 싶었던 도예를 시작했다. 그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Bucket List)로 중국어·서예·천연염색 등 10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도예였다”고 말했다.
국악학원 안에 토담갤러리 열어
김씨는 진위면에 있는 미류도예에서 도예를 배웠다. 농악 공연과 강습을 마친 후 매일 오후 8~10시 도자기를 만들었다. 다기와 등잔·접시·항아리 등 수많은 생활도예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도예를 배우는 내내 흙과 유약, 불의 조화가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데 매료됐다”며 “그러면서 깊고 투박한 멋에 깊이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2년 동안 많은 작품을 만들어오면서 완성된 작품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에 진열하게 됐다. 작품성, 실용성이 뛰어나다 보니 지인들로부터 호응을 얻어 지난해 전시장 겸 판매장인 토담갤러리를 열었다.
지금도 농악 공연과 강습이 끝나는 대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김씨. 그는 “농악은 직업이고 도예는 취미”라며 “지금까지는 생활도예 위주로 도자기를 만들었는데 앞으로는 완성도 높은 작품 위주로 도자기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생을 함께하는 벗처럼 오랫동안 농악인으로, 흙 향을 맡으며 도자기를 굽는 도예가로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문의: 665-1400)
<출처 평택안성교차로 김주란 기자 2015-02-04>
<출처 평택안성교차로 김주란 기자 2015-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