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을 비껴간 리들리 스콧의 화살… '엑소더스:신들과 왕들'
과녁을 비껴간 리들리 스콧의 화살… '엑소더스:신들과 왕들'
by 뉴시스 2014.12.03
'엑소더스:신들과 왕들'(감독 리들리 스콧·이하 '엑소더스')은 스케일로 관객을 압도한다. 모세와 히브리인의 '출애굽'을 다룬 영화는 구약성경에 적힌 신의 기적을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술력으로 구현한다. 피로 물든 나일강, 개구리떼, 파리떼, 메뚜기떼, 우박 등 글로 읽었던, 신이 이집트에 내린 재앙을 영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홍해의 기적도 볼 수 있다. 거대하고 찬란한 고대 이집트의 문명이 화면에서 부활한다. '엑소더스' 예고편은 영화의 규모를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영화를 홍보하는 입장에서 볼 때 2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주는 스펙터클을 놓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예고편이 의도한대로 누군가는 영화의 규모 자체에 이끌려 이 작품을 선택할지 모른다. '글래디에이터'(2000)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리들리 스콧의 '액션사극 대서사시'를 떠올리며 극장을 찾을 것이다. 가톨릭 신자나 기독교인은 당신들의 '하나님'이 행한 기적을 보기 위해 '성지순례'하듯 극장에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엑소더스'는 이런 기대를 하나같이 비껴간다. 규모는 배경일 뿐이고 액션의 양은 적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엑소더스'는 '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스콧 감독은 출애굽기를 통해 혹은 신을 통해 '어떤 인간'과 동시에 '모든 인간' 그리고 '종교적 인간'에 대해 말한다. 이 영화의 예고편은 관객들을 오도(誤導)한다.
이집트 왕자 모세(크리스쳔 베일)는 우연히 히브리인 노예들이 사는 지역에 갔다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파라오 람세스(조얼 에저튼) 역시 모세가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를 유배지로 보낸다. 유배지에서 평범한 양치기로 살아가던 모세는 신의 계시를 받고 히브리인을 구하기 위해 다시 람세스가 있는 멤피스로 향한다.
'엑소더스'는 신이 행한 기적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틀 안에 집어넣은 영화가 아니다. 시각효과는 화려하고 시종일관 관객을 압도하지만 리들리 스콧의 관심은 '콩밭'에 가 있다. 그는 하늘의 신과 현실의 절망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괴리감과 육중한 책임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인간을 담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절망 속에서 길을 찾아내야만 하는 '인간들'을 다룬다. 영화에서 모세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종교인이 아니다. 종교적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도 아니다. 그는 '단독자'로서 선 인간이다.
영화에서 모세는 끊임없이 신과 불화한다. 난폭하고, 잔인하며, 불친절한 신(영화가 신을 아이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앞에서 그는 분노하고 좌절한다. 잠언 3장5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에 의지하지 말라." 하지만 모세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히브리인의 고통은 현실이다. 모세는 신이 아닌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가 종교적인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다. 그의 종교는 신이 아닌 오히려 자기 자신이다. 모세와 신의 대화가 여호수와(애런 폴)의 눈에는 모세의 독백으로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영화라는 예술 또한 결국 인간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단독자'는 '인간은 절망을 통해서 자신의 실존을 자각하고 절대자인 신에 대응할 수가 있으며, 그렇게 해야 진정한 신앙을 얻는다. 이와 같이 고독이나 절망, 또는 불안 등을 매개로 하여 실존으로서의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명확히 한다'는 것이다. 리들리 스콧은 모세를 정확히 키에르케고르 식으로 이해하고, 풀어낸다. 카메라가 고뇌에 빠진 모세의 얼굴을 반복해서 클로즈업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리들리 스콧이 모세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것과 그것이 관객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 지점에서 '엑소더스'는 성과와 멀어진다. 이는 상당 부분 시각효과에 대한 욕심때문이다. 영화의 물량 공세는 관객이 온전히 모세의 감정에 몰입하는 걸 방해한다. 감정이 조금씩 쌓이고 있을 때쯤 하필 화려한 CG가 등장한다. 눈에 대한 자극이 머리의 자극을 압도하고 만다. 영화의 크기를 보여주는 시각효과와 영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철학적 고민을 제한된 러닝타임에 기계적으로 담으려다 보니 불협화음을 일으켜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만들어졌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구현한 비주얼을 감상하러 간 관객은 지루하게 느낄 것이고, 출애굽기에 대한 스콧의 해석이 궁금했던 관객은 감정의 흐름을 끊는 편집에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관객은 예고편에서 본 게 '엑소더스'의 전부라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영화의 얕은 철학에 코웃음을 칠 것이다. 리들리 스콧이 날린 화살들은 모두 표적을 빗나간다.
모세를 연기한 크리스쳔 베일은 그가 왜 할리우드에서 가장 믿음직한 배우인지를 확인시켜 준다. 지도자로서 모세의 강인함과 그저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모세의 나약함을 온몸으로 연기한다. '엑소더스'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가 생애 최고 연기는 아니지만 베일의 기준에서 평범한 연기가 다른 배우의 그것과는 깊이가 다름을 보여준다. 람세스 역의 조얼 에저튼도 인상적이다. 에저튼은 가늘게 뜬 눈 속에 신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담는 데 성공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엔딩 크레딧에 이 영화가 2012년 세상을 떠난 동생 토니 스콧 감독을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어쩌면 '엑소더스'는 동생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아픔과 그 절망에서 빠져나온 자신의 경험을 모세의 이야기를 빌려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뉴시스 기사 · 사진 제공>
예고편이 의도한대로 누군가는 영화의 규모 자체에 이끌려 이 작품을 선택할지 모른다. '글래디에이터'(2000)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리들리 스콧의 '액션사극 대서사시'를 떠올리며 극장을 찾을 것이다. 가톨릭 신자나 기독교인은 당신들의 '하나님'이 행한 기적을 보기 위해 '성지순례'하듯 극장에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엑소더스'는 이런 기대를 하나같이 비껴간다. 규모는 배경일 뿐이고 액션의 양은 적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엑소더스'는 '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스콧 감독은 출애굽기를 통해 혹은 신을 통해 '어떤 인간'과 동시에 '모든 인간' 그리고 '종교적 인간'에 대해 말한다. 이 영화의 예고편은 관객들을 오도(誤導)한다.
이집트 왕자 모세(크리스쳔 베일)는 우연히 히브리인 노예들이 사는 지역에 갔다가 자기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파라오 람세스(조얼 에저튼) 역시 모세가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를 유배지로 보낸다. 유배지에서 평범한 양치기로 살아가던 모세는 신의 계시를 받고 히브리인을 구하기 위해 다시 람세스가 있는 멤피스로 향한다.
'엑소더스'는 신이 행한 기적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틀 안에 집어넣은 영화가 아니다. 시각효과는 화려하고 시종일관 관객을 압도하지만 리들리 스콧의 관심은 '콩밭'에 가 있다. 그는 하늘의 신과 현실의 절망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괴리감과 육중한 책임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 인간을 담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절망 속에서 길을 찾아내야만 하는 '인간들'을 다룬다. 영화에서 모세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종교인이 아니다. 종교적 깨달음을 구하는 구도자도 아니다. 그는 '단독자'로서 선 인간이다.
영화에서 모세는 끊임없이 신과 불화한다. 난폭하고, 잔인하며, 불친절한 신(영화가 신을 아이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앞에서 그는 분노하고 좌절한다. 잠언 3장5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에 의지하지 말라." 하지만 모세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히브리인의 고통은 현실이다. 모세는 신이 아닌 자신을 믿어야 한다. 그가 종교적인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 때문이 아니다. 그의 종교는 신이 아닌 오히려 자기 자신이다. 모세와 신의 대화가 여호수와(애런 폴)의 눈에는 모세의 독백으로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영화라는 예술 또한 결국 인간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단독자'는 '인간은 절망을 통해서 자신의 실존을 자각하고 절대자인 신에 대응할 수가 있으며, 그렇게 해야 진정한 신앙을 얻는다. 이와 같이 고독이나 절망, 또는 불안 등을 매개로 하여 실존으로서의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명확히 한다'는 것이다. 리들리 스콧은 모세를 정확히 키에르케고르 식으로 이해하고, 풀어낸다. 카메라가 고뇌에 빠진 모세의 얼굴을 반복해서 클로즈업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리들리 스콧이 모세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것과 그것이 관객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 지점에서 '엑소더스'는 성과와 멀어진다. 이는 상당 부분 시각효과에 대한 욕심때문이다. 영화의 물량 공세는 관객이 온전히 모세의 감정에 몰입하는 걸 방해한다. 감정이 조금씩 쌓이고 있을 때쯤 하필 화려한 CG가 등장한다. 눈에 대한 자극이 머리의 자극을 압도하고 만다. 영화의 크기를 보여주는 시각효과와 영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철학적 고민을 제한된 러닝타임에 기계적으로 담으려다 보니 불협화음을 일으켜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만들어졌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구현한 비주얼을 감상하러 간 관객은 지루하게 느낄 것이고, 출애굽기에 대한 스콧의 해석이 궁금했던 관객은 감정의 흐름을 끊는 편집에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관객은 예고편에서 본 게 '엑소더스'의 전부라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영화의 얕은 철학에 코웃음을 칠 것이다. 리들리 스콧이 날린 화살들은 모두 표적을 빗나간다.
모세를 연기한 크리스쳔 베일은 그가 왜 할리우드에서 가장 믿음직한 배우인지를 확인시켜 준다. 지도자로서 모세의 강인함과 그저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모세의 나약함을 온몸으로 연기한다. '엑소더스'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가 생애 최고 연기는 아니지만 베일의 기준에서 평범한 연기가 다른 배우의 그것과는 깊이가 다름을 보여준다. 람세스 역의 조얼 에저튼도 인상적이다. 에저튼은 가늘게 뜬 눈 속에 신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을 담는 데 성공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엔딩 크레딧에 이 영화가 2012년 세상을 떠난 동생 토니 스콧 감독을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어쩌면 '엑소더스'는 동생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아픔과 그 절망에서 빠져나온 자신의 경험을 모세의 이야기를 빌려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뉴시스 기사 · 사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