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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名不虛傳], 부마도위[駙馬都尉]의 가옥

명불허전[名不虛傳], 부마도위[駙馬都尉]의 가옥

by 오민기 2015.03.31

/ 오민기 기자 futurelove20@naver.com


부마도위는 고구려 시대부터 고려 시대, 조선시대까지 임금의 딸과 결혼한 사람에 한하여 "부마도위[駙馬都尉]" 직책을 부여했다고 한다.
원칙적으로 부마도위[駙馬都尉]는 관직은 물론, 정사에 관여를 할 수가 없었다. 조선 초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이 직책이 어째서 정사에 관여를 못하게 된 것일까?시작은 조선 4대 임금 세종(1397-1450)이 즉위하며 그 위상이 대폭 축소되었다.부마도위[駙馬都尉]에게 붙이던 군(君)의 칭호를 위(慰)로 강등시키며, 막강했던 권력을 꺾어버린 이유이다.
이로써 부마도위[駙馬都尉]의 활동 범위는 왕실의 예식이나, 외교적인 의전행사에만 참여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품계의 제한을 둠으로써 그들의 권력을 저하시켰다.
공주와 부부의 연을 맺은 부마도위[駙馬都尉]는 첫 품계로 종 1품부터 시작했으며, 옹주와 부부의 연을 맺은 부마도위[駙馬都尉]는 종 2품부터 시작했다.하지만 이후 종 1 품은 정 1품까지 승차가 가능하며, 종 2 품은 정 2품까지 승차가 가능했다고 하니, 이전보다 하락한 권력이지만,완전한 권력 상실은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나름대로 위치에 있던 부마도위[駙馬都尉] 의 직책은 딱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며 점점 사라졌다.하지만 그들의 생활에서 엿볼 수 있는 문화적가치는 나름대로 높았다.
서울 8대 가옥이라 불리는 부마도위[駙馬都尉] 박영효(1861-1939)의 가옥은 현재 대한민국의 대표 마스코트가 된지 오래다.남산골 한옥마을에 위치한, 박영효의 가옥은 아직 겨울의 향기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원한 느낌과 포근한 느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은은한 조명이, 그 효과를 더해주고 있는 느낌이다. 도심 속 가깝게 보이는 남산타워와 도심 속 불빛들은 이질적이면서도 그 어울림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권력. 그것만을 바라보고 부부의 연을 맺진 않았을 것이다. 평생을 한 여자에게 권력 다툼이나 하고자 연을 맺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부마도위[駙馬都尉]의 직책을 받으며 느꼈던 부담감은, 어쩌면 이러한 평온한 가옥에서나마 위안을 얻어야 하지 알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 사진.글 오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