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의 역사, 흑인의 눈물로부터 한국의 대표 음식까지.
치킨의 역사, 흑인의 눈물로부터 한국의 대표 음식까지.
by 오민기 2014.11.27
오민기 기자 futurelove20@naver.com치킨의 시작은 미국 남부의 흑인들로부터 시작됐다.노예제도가 합법이었던 남북전쟁 이전,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들에게 닭은 사육, 매매, 조리가 허용된 유일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남부에는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이 정착했는데 그들은 튀긴 닭 요리를 즐겨먹었다. 아프리카에서 이미 튀기는 방식의 조리법에 익숙했던 흑인 노예들은 백인들이 가정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기존의 스코틀랜드 음식에서는 볼 수 없었던 향신료와 양념을 더해 프라이드치킨이 탄생되었다. 남북 전쟁이 끝나자 프라이드치킨은 미국 남부의 백인과 흑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겨먹는 음식이 되기도 했는데, 이것이 개발되어 1940년대 치킨 요식업계의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KFC가 탄생된 것이다. 켄터키 주의 한 카페 주인이었던 홀랜드 샌더스(Harland Sanders)는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밀가루와 11가지의 향신료 가루를 섞어만든 튀김가루, 압력솥을 이용하여 짧은 조리시간 등을 개발해냈다. 65세의 나이에 자신이 만든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픈한 프랜차이즈 프라이드치킨 전문점 "켄터키 프라이드치킨(Kentucky Fried hicken) "
하지만 치킨의 역사가 흑인에게서 나왔기에, 많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프라이드치킨이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 저항하는 의미로 80년대에 흑인들은 프라이드치킨을 먹지 않으려고 했으며, 최근 2013년도에는 세계적인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Tiger Woods) "를 두고 퍼지 조엘 러화 세르지오 가르시아가 각각 ‘마스터즈 대회 챔피언 디너에 프라이드치킨을 대접해서는 안 된다’ , ‘매일 밤 초대해서 프라이드치킨을 먹이겠다’는 등의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가 공개 사과한 적도 있다.
이처럼 프라이드치킨의 본토, 미국 내에서도 이 음식에 대한 많은 스토리가 있듯, 한국에서도 많은 일들을 겪어 오늘날의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치킨이 탄생되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큰 아픔을 겪은 한국. 고기는 물론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한 시절이라 더욱 육류 섭취의 욕구가 강해져있던 시기였다. 때마침 가장 저렴한 육류, 바로 닭고기의 소비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닭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하게 다가왔던 치킨. 말 그대로 닭을 그대로 가마솥에 끓인 기름에 튀겨내는 음식으로,고소한 맛과 느끼한 맛에 굶주리던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느끼함과 닭의 특유 비린내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먹다가 중간에 숟가락을 내려놓게 되는데, 이걸 본 양념치킨의 시초 개발자 "윤종계 " 씨는 연구 개발 끝에 물엿과 고추장을 버무린 양념 통닭을 탄생시킨다. 그야말로 국내 치킨업계의 활력을 불어넣은 주인공인 셈이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자극적인 맛으로, 꿀처럼 달달해진 맛으로, 또는 각종 채소와 버무린 웰빙음식으로 퓨전 되어가는 음식 "치킨"
한 조사기관에 따른 한국인의 치킨 수요량은 하루에 52만 마리.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기간 동안에는 단일 브랜드 치킨만 하루에 40만 마리가 판매량을 보였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치킨집을 제외한 나머지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만 280개, 등록된 매장수 3만 2천 개다. 앞서 말했듯 "씨암탉을 잡아 사위 대접한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귀했던 닭고기였지만, 발전된 대한민국답게 더욱 깔끔해져가는 치킨은 하나의 대중음식으로 이미 자리매김을 했다.
깔끔한 포장. 한국인 입맛에 맞춘 각종 채소 및 음식의 추가로 대한민국 치킨업계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지 않을까 싶다.
/오민기
하지만 치킨의 역사가 흑인에게서 나왔기에, 많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프라이드치킨이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를 저항하는 의미로 80년대에 흑인들은 프라이드치킨을 먹지 않으려고 했으며, 최근 2013년도에는 세계적인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Tiger Woods) "를 두고 퍼지 조엘 러화 세르지오 가르시아가 각각 ‘마스터즈 대회 챔피언 디너에 프라이드치킨을 대접해서는 안 된다’ , ‘매일 밤 초대해서 프라이드치킨을 먹이겠다’는 등의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가 공개 사과한 적도 있다.
이처럼 프라이드치킨의 본토, 미국 내에서도 이 음식에 대한 많은 스토리가 있듯, 한국에서도 많은 일들을 겪어 오늘날의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치킨이 탄생되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큰 아픔을 겪은 한국. 고기는 물론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한 시절이라 더욱 육류 섭취의 욕구가 강해져있던 시기였다. 때마침 가장 저렴한 육류, 바로 닭고기의 소비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닭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하게 다가왔던 치킨. 말 그대로 닭을 그대로 가마솥에 끓인 기름에 튀겨내는 음식으로,고소한 맛과 느끼한 맛에 굶주리던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느끼함과 닭의 특유 비린내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먹다가 중간에 숟가락을 내려놓게 되는데, 이걸 본 양념치킨의 시초 개발자 "윤종계 " 씨는 연구 개발 끝에 물엿과 고추장을 버무린 양념 통닭을 탄생시킨다. 그야말로 국내 치킨업계의 활력을 불어넣은 주인공인 셈이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자극적인 맛으로, 꿀처럼 달달해진 맛으로, 또는 각종 채소와 버무린 웰빙음식으로 퓨전 되어가는 음식 "치킨"
한 조사기관에 따른 한국인의 치킨 수요량은 하루에 52만 마리.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기간 동안에는 단일 브랜드 치킨만 하루에 40만 마리가 판매량을 보였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치킨집을 제외한 나머지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만 280개, 등록된 매장수 3만 2천 개다. 앞서 말했듯 "씨암탉을 잡아 사위 대접한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귀했던 닭고기였지만, 발전된 대한민국답게 더욱 깔끔해져가는 치킨은 하나의 대중음식으로 이미 자리매김을 했다.
깔끔한 포장. 한국인 입맛에 맞춘 각종 채소 및 음식의 추가로 대한민국 치킨업계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지 않을까 싶다.
/오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