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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사랑했던 덕수궁, 그리고 그곳의 화려했던 수문장 교대식

고종이 사랑했던 덕수궁, 그리고 그곳의 화려했던 수문장 교대식

by 오민기 2015.01.15

/ 오민기 기자 futurelove20@naver.com

덕수궁은 조선시대의 많은 아픔을 담고 있는 궁이다. 그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자면, 원래 덕수궁은 세조의 큰손자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다. 1593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의주에 피신해있던 선조가 한성으로 돌아온 뒤 이곳을 정릉동행궁(貞陵洞行宮)으로 불리며 임시 거처로 삼았다. 그 이후 1608년 2월, 승하하기 전까지 덕수궁에서 정무를 보았으며, 광해군도 이곳 서청(西廳)에서 즉위했다. 또한 1896년 아관파천 이후에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9월에는 대한 제국이 세워졌고, 고종의 황제 즉위식이 열렸으며 정궁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굴곡 많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이곳 덕수궁은, 조선시대 중후반을 통틀어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 덕수궁은 조선시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러 많은 문화적 쇄신을 거듭했다. 덕수궁은 1998년 미술관으로 개관되어 일반인들의 문화적 지식을 높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궁내에 한국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카페로 누구나 한국의 미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되었다.

그 결과 국. 내외 많은 사람들이 이곳 덕수궁을 찾고 있는데, 그중에서 단연 으뜸인 구경거리는 바로 "수문장 교대식"이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궁성의 경비를 관장하고 대전을 호위하는 군대를 "금군 "이라고 불렀다. 궁성에는 수문장청이 설치되었으며, 종6품에 해당하는 수문장을 비롯한 금군이 궐내의 수위를 담당했다.수문장 교대식에 참여하는 문. 무관은 그 역할에 따라 의장과 복색이 서로 달랐다. 하지만 중앙에 위치한 수문장은 그야말로 화려했으며, 위엄을 갖춘 모습이다. 이들을 감독하는 승정원 주서는 녹관복차림이며, 한국의 전통악기를 들고 등장하는 취타 대는 노란 복장으로 지금의 군악대와 성격이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많은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사진기 셔터를 누른다.

근현대를 상징하는 덕수궁. 고종의 궁호(宮號)가 "덕수"(德壽)였기 때문에 이곳의 명칭은 덕수궁이라고 한다. "덕을 누리며 오래 살라는 뜻"으로 궁 명칭이 "덕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일제시대의 잔해라며 본디 명칭이었던 "경운궁"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또 곳곳에서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덕수궁. 수백 년을 버텨온 이 건축물의 의미를 되새기며, 최근에 이슈화되고 있는 현대인들의 팽팽한 개인 이기주의는 깊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 사진.글 오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