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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함께했던 열차

역사와함께했던 열차

by 오민기 2015.02.12

/ 오민기 기자 futurelove20@naver.com

인류가 탄생시킨 위대한 운송수단으로 기차, 자동차, 비행기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중 값에 비해 가장 효율적인 기차는 빠른 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렇다면 열차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814년 영국의 스티븐슨이 최초 증기기관차를 발명함으로써 전 세계 철도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기차의 발전은 점차 속도(km/h)로 이어졌다. 10km의 속도로 운행했던 증기기관차는 점차 100km를 웃도는 속도로 발전하였다. 효율성 탓에 1894년 루돌프 디젤 박사에 의해 디젤 열차가 개발되었지만 이후에도 줄 곳 증기기관차가 계속 쓰였다.

하지만 증기기관차의 명줄은 그다지 길지만은 못 했다. 디젤 기관차의 빠르고 효율적인 특징 탓에 증기기관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증기기관차의 뒷모습도 어쩌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디젤 기관차의 탄생으로 인해 세계 2차 대전, 한국전쟁 등, 전쟁의 전개가 빨라졌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자리 잡고 있다.

디젤기관차와 더불어 비슷한 시대에 전기기관차도 연구되고 있었다. 하지만 전지로 열차를 움직이기에는 디젤 기관차에 비해 다소 한계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각광받지 못했지만, 철도의 볼티모어 벨트 선으로 전철화하여, 이후 지하 철도나 도시철도에서 많이 쓰였다. 에너지 효율성이 디젤기관차와 증기기관차에 비해 월등히 높았으며, 견인력에 대해서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효율을 보여주고 있음에 따라 현대에 이르러 각 나라에서는 전기 기관차를 이용한 철도망 확장을 위해 수없이 노력 중에 있다.

뿐만 아니라 전기 기관차는 나날이 발전하여 초고속 열차로까지 발전하였다. 흔히 200km/h가 넘어가면 초고속 열차라고 불리는데, 세계 최초 고속 열차인 일본의 신칸센이 1964년에 개통하여 3년도 안되어 1억 명을 돌파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대한민국의 열차 역사 또한 그리 짧지만은 않다. 1899년 경인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열차가 들어오게 되었다. 증기기관차가 운행되며 1920년대 용산역, 철원역등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세계적인 동향과 더불어 광복 이후 제작될 필요성이 없음에 따라 1951년 유엔군에 의해 디젤기관차가 50여 대 정도 운행되었다. 하지만 주로 군사장비를 수송하기 위해 쓰였기 때문에 유엔군이 철수한 이후에는 4대만 남겨졌다.

이후 전 세계 각국에서 철도 붐이 일어나자 대한민국도 1978년 첫 철도 국산화를 실현시켰다.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편리한 지하철로써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당당히 철도 선진국이 되기도 했다. 철도의 역사만큼이나 대한민국은 철도와 연관성이 깊다.

이를테면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한 "월정리 역", 그곳에는 낡은 열차 한 대가 서있다. 아니 어쩌면 흔히 말하는 녹슬고, 부서져서 형체가 안 보인다는 말이 더욱 맞을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월정리 역에서 마지막으로 기적을 울렸던 객차 잔해가 일부 남아있으며, 유엔군의 폭격으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인민군 화물열차의 골격이 덩그러니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 들어보았을 법한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말 또한 철도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고속철의 발전으로 수백 km/h의 속력으로 달리는 기차는 현대에 이르러 몇 차례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았으며 고급화된 서비스로 인해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어릴 적 보따리 하나 머리에 이고 시내로 나가는 할머니들의 정겨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누군가의 목적지는 그저 "빠른 이동"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목적지는 어쩌면 속도가 아닌 "그 시간의 소중함" 일지도 모른다.

/ 사진.글 오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