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히 부서져 버린 민주계의 비극
산산히 부서져 버린 민주계의 비극
by 정광일칼럼리스트 2009.05.26
<민주당 몰락사>언론들도 파악 못한 민주당내 민주계의 허상 통합민주당내 민주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7.6 통합민주당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소수의 민주계는 다수의 열린당계에 완벽하게 흡수됐다. 조직의 논리이고 힘의 논리에 의한 흡수다.
이쯤해서 2002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이후 민주당의 몰락 변천사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의 집권과 함께 민주당의 분열은 시작됐다. 소위 말하는 천신정,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을 중심으로 민주당은 분당의 길을 걷기시작했다. 2003년 여름을 지나면서 천신정을 중심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인사들이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신생 열린우리당의 민주당 죽이기의 중심에선 노무현 대통령은 17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 된다"는 열린당 편들기 발언으로 민주당을 흥분시켰고 급기야는 탄핵의 대상이 된다.
노 대통령 탄핵역풍 속에서 17대 총선을 맞이한 민주당은 조순형 추미애 지도부 갈등으로 옥새파동을 거치면서 4.15총선일을 거쳤다.
탄핵역풍과 당내 옥새파동이라는 두 가지 악재를 안고 17대 총선을 거친 민주당은 국회의석 9석이라는 초라한 모습으로 지지자들 앞에 선다.
원내 의석 9석의 초미니 민주당은 '한화갑 민주당'으로 변신한다. 한화갑 민주당은 민주당 재건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당내 다양한 의견 수렴을 배척하는 과정을 거친다.
초라한 초미니 민주당은 주류와 비주류로 나눈다. 비주류는 한화갑 민주당에서 소위된 다수의 침묵자와 17대 총선낙선자였다.
한 대표는 17대 낙선자들이 당무에 간섭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다. 다수의 침묵하는 비주류는 한화갑시대의 마감을 기다렸다.
2년이 지난 후 한화갑 대표는 대법원의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는 판결에 발목이 잡혀 의원직 상실과 함께 민주당을 떠나면서 공동대표였던 장상에게 당무 방망이를 넘겼다.
민주당은 어정쩡한 장상 대표 체제로 이어지면서 전당대회가 준비됐다. 이 때 비주류 수장으로 박상천 전 대표가 침묵을 깨고 전면에 나섰다.
2007년 봄 민주당 지도부를 새로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사실상 한 전 대표 대리인이라고 알려진 장상과 비주류 수장인 박상천의 대결구도를 만들었다. 소수의 원내 현역들은 똘똘 뭉쳐 비주류 수장 박상천의 당권장악을 저지했지만 다수의 비주류는 박상천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민주당의 당권을 쥔 박상천은 한화갑식 당무방식을 승계했다. 민주당 내외에서는 박상천이 한화갑 보다 다 독하다는 말이 나돌았다.
당권 경쟁에서 패한 장상 지지자들은 열린당과 합당에 나섰다. 김대중 전 대통령 측도 합당 정국에 합세 힘을 실어줬다.
이낙연, 김효석 의원 등이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대통합민주신당이 만들어졌다. 초미니 민주당이 다시 분열됐다.
대통합민주당이 만들어질때 박준영 전남지사, 박광태 광주시장 등 민주당 소속 광역 기초 당체장과 지자체 의원들이 대거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 결과 박상천 민주당은 극소수로 전락했다.
지역구 의원 중에는 전남 나주 화순의 최인기 의원과 서울의 조순형 의원만 남고 법적으로 탈당을 할수 없는 손봉숙, 김종인, 이승희, 김송자 등 4명의 비례대표 만 남았다. 일반당원과 지지자들도 대거 이탈했다. 민주당 지역 조직은 사실상 와해됐다.
2007년 12월 대선이 다가왔다.
이름 뿐인 민주당에 이인제 의원이 입당했고 이인제 의원은 어렵지 않게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12월 대선 구도는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합신당 정동영, 민주당 이인제로 편성됐다.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는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이 와중에 정동영 이인제 단일화 논의가 제기됐다.
그러나 단일화 논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투표일이 목전에 다기왔다. 투표일 3일을 앞두고 박상천 민주당 지도부는 이인제 후보에게 후보사퇴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이인제는 버텼다.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530만표 차이로 이겼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1% 미만이라는 득표를 기록했다. 초라한 민주당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이름 뿐인 민주당의 한계가 나타났다. 실패한 정동영 이인제 후보 단일화가 내용적으로 정동영 쪽으로 표가 몰렸다. 민주당 지도부도 민주당 후보인 이인제가 아닌 대통합신당 정동영 후보를 찍었을 것이다.
대선참패의 충격속에 박상천 민주당은 손학규의 대통합신당과 합당을 선언했다. 손학규 박상천 공동대표 체제가 통합민주당 간판으로 통합했다.
18대 총선 공천을 앞두고 민주계라는 말이 사용됐다. 통합민주당에서 민주계의 지분 문제가 표면에 노출됐다. 그러나 손학규는 통합민주당 공천권을 제 3자에게 넘겼다. 통합민주당 공천권을 거머쥔 박재승은 민주계 지분을 무시했고, 반노무현 성향 인사들의 공천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그 결과 민주계 속에 남아있던 총선출마자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다. 공천후유증은 민주당 탈당자를 양산했다. 민주계의 분열은 가속화됐다.
지역구 공천에서 민주계 몫을 놓친 박상천 공동대표는 지역구 공천 파동 와중에 자신의 측근들을 비례대표로 깜짝 공천하는 순발력을 보였다. 민주계는 또 다시 소수의 박상천계로 자리매김했다. 민주계 내부에서도 박상천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소수의 민주계가 다시 쪼게졌다.
통합민주당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7.6전당대회가 다가왔다. 언론은 민주계가 30% 대의원을 배당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정세균 정대철 추미애가 당대표 후보로 등장했다. 주요언론들은 민주계가 정대철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상은 크게 달랐다.
정대철 추미애 후보는 정세균을 저지하는 연합전선을 펼쳤다. 이들은 정세균이 당선되면 통합민주당은 도로 열린당이 된다고 목청을 높혔다.
그러나 언론이 말하는 '민주계=박상천계'는 열린당 당의장을 두 번이나 지낸 정세균을 당 대표로 만들기 위해 적극 지원했다.
박상천계에서 밀린 또 다른 민주계 비주류 집단은 정대철을 지지했고 젊은 층 일부는 추미애 후보를 지지했다. 30% 대의원을 갖고 있다는 민주계는 전대에서 표로 뭉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박상천계가 세간의 추측과 달리 정세균을 지지한 것은 박상천의 국회부의장 출마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내 81명의 현역들이 선출하는 통합민주당 몫 국회부의장을 선출하기 때문이다. 정세균의 도움없이는 박상천의 국회부의장 꿈은 물거품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박상천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정세균을 지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정세균이 쉽게 통합민주당 당 대표가 됐다.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민주계가 완전히 소멸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민주계 수장인 박상천이 정세균을 밀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역설적으로 박상천이 이번 전대를 통해 진짜통합을 제대로 실천한 셈이다.
민주당 국회부의장을 선출하는 현역들의 원내투표가 곧 실시된다. 민주계를 완벽하게 소멸시키고 진짜통합을 이룬 박상천 국회부의장 후보가 열린당 출신 현역들에게 몇 표를 얻게 될지 궁금해진다.
박상천은 더이상 계보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통합민주당내 열린계가 이를 인정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제 통합민주당 지도부와 18대 국회에는 민주계가 없다. 다만 민주계는 지난 총선과정에서 민주당을 탈당한 인사들과 정세균 통합민주당을 도로열린당이라고 평가하는 지지자들로 만 존재할 뿐이다.
이쯤해서 2002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이후 민주당의 몰락 변천사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의 집권과 함께 민주당의 분열은 시작됐다. 소위 말하는 천신정,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을 중심으로 민주당은 분당의 길을 걷기시작했다. 2003년 여름을 지나면서 천신정을 중심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인사들이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신생 열린우리당의 민주당 죽이기의 중심에선 노무현 대통령은 17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 찍으면 한나라당 된다"는 열린당 편들기 발언으로 민주당을 흥분시켰고 급기야는 탄핵의 대상이 된다.
노 대통령 탄핵역풍 속에서 17대 총선을 맞이한 민주당은 조순형 추미애 지도부 갈등으로 옥새파동을 거치면서 4.15총선일을 거쳤다.
탄핵역풍과 당내 옥새파동이라는 두 가지 악재를 안고 17대 총선을 거친 민주당은 국회의석 9석이라는 초라한 모습으로 지지자들 앞에 선다.
원내 의석 9석의 초미니 민주당은 '한화갑 민주당'으로 변신한다. 한화갑 민주당은 민주당 재건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당내 다양한 의견 수렴을 배척하는 과정을 거친다.
초라한 초미니 민주당은 주류와 비주류로 나눈다. 비주류는 한화갑 민주당에서 소위된 다수의 침묵자와 17대 총선낙선자였다.
한 대표는 17대 낙선자들이 당무에 간섭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다. 다수의 침묵하는 비주류는 한화갑시대의 마감을 기다렸다.
2년이 지난 후 한화갑 대표는 대법원의 정치자금법 위반이라는 판결에 발목이 잡혀 의원직 상실과 함께 민주당을 떠나면서 공동대표였던 장상에게 당무 방망이를 넘겼다.
민주당은 어정쩡한 장상 대표 체제로 이어지면서 전당대회가 준비됐다. 이 때 비주류 수장으로 박상천 전 대표가 침묵을 깨고 전면에 나섰다.
2007년 봄 민주당 지도부를 새로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사실상 한 전 대표 대리인이라고 알려진 장상과 비주류 수장인 박상천의 대결구도를 만들었다. 소수의 원내 현역들은 똘똘 뭉쳐 비주류 수장 박상천의 당권장악을 저지했지만 다수의 비주류는 박상천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민주당의 당권을 쥔 박상천은 한화갑식 당무방식을 승계했다. 민주당 내외에서는 박상천이 한화갑 보다 다 독하다는 말이 나돌았다.
당권 경쟁에서 패한 장상 지지자들은 열린당과 합당에 나섰다. 김대중 전 대통령 측도 합당 정국에 합세 힘을 실어줬다.
이낙연, 김효석 의원 등이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대통합민주신당이 만들어졌다. 초미니 민주당이 다시 분열됐다.
대통합민주당이 만들어질때 박준영 전남지사, 박광태 광주시장 등 민주당 소속 광역 기초 당체장과 지자체 의원들이 대거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 결과 박상천 민주당은 극소수로 전락했다.
지역구 의원 중에는 전남 나주 화순의 최인기 의원과 서울의 조순형 의원만 남고 법적으로 탈당을 할수 없는 손봉숙, 김종인, 이승희, 김송자 등 4명의 비례대표 만 남았다. 일반당원과 지지자들도 대거 이탈했다. 민주당 지역 조직은 사실상 와해됐다.
2007년 12월 대선이 다가왔다.
이름 뿐인 민주당에 이인제 의원이 입당했고 이인제 의원은 어렵지 않게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12월 대선 구도는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합신당 정동영, 민주당 이인제로 편성됐다.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는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이 와중에 정동영 이인제 단일화 논의가 제기됐다.
그러나 단일화 논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투표일이 목전에 다기왔다. 투표일 3일을 앞두고 박상천 민주당 지도부는 이인제 후보에게 후보사퇴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이인제는 버텼다.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530만표 차이로 이겼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1% 미만이라는 득표를 기록했다. 초라한 민주당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이름 뿐인 민주당의 한계가 나타났다. 실패한 정동영 이인제 후보 단일화가 내용적으로 정동영 쪽으로 표가 몰렸다. 민주당 지도부도 민주당 후보인 이인제가 아닌 대통합신당 정동영 후보를 찍었을 것이다.
대선참패의 충격속에 박상천 민주당은 손학규의 대통합신당과 합당을 선언했다. 손학규 박상천 공동대표 체제가 통합민주당 간판으로 통합했다.
18대 총선 공천을 앞두고 민주계라는 말이 사용됐다. 통합민주당에서 민주계의 지분 문제가 표면에 노출됐다. 그러나 손학규는 통합민주당 공천권을 제 3자에게 넘겼다. 통합민주당 공천권을 거머쥔 박재승은 민주계 지분을 무시했고, 반노무현 성향 인사들의 공천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그 결과 민주계 속에 남아있던 총선출마자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했다. 공천후유증은 민주당 탈당자를 양산했다. 민주계의 분열은 가속화됐다.
지역구 공천에서 민주계 몫을 놓친 박상천 공동대표는 지역구 공천 파동 와중에 자신의 측근들을 비례대표로 깜짝 공천하는 순발력을 보였다. 민주계는 또 다시 소수의 박상천계로 자리매김했다. 민주계 내부에서도 박상천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소수의 민주계가 다시 쪼게졌다.
통합민주당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7.6전당대회가 다가왔다. 언론은 민주계가 30% 대의원을 배당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정세균 정대철 추미애가 당대표 후보로 등장했다. 주요언론들은 민주계가 정대철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상은 크게 달랐다.
정대철 추미애 후보는 정세균을 저지하는 연합전선을 펼쳤다. 이들은 정세균이 당선되면 통합민주당은 도로 열린당이 된다고 목청을 높혔다.
그러나 언론이 말하는 '민주계=박상천계'는 열린당 당의장을 두 번이나 지낸 정세균을 당 대표로 만들기 위해 적극 지원했다.
박상천계에서 밀린 또 다른 민주계 비주류 집단은 정대철을 지지했고 젊은 층 일부는 추미애 후보를 지지했다. 30% 대의원을 갖고 있다는 민주계는 전대에서 표로 뭉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박상천계가 세간의 추측과 달리 정세균을 지지한 것은 박상천의 국회부의장 출마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내 81명의 현역들이 선출하는 통합민주당 몫 국회부의장을 선출하기 때문이다. 정세균의 도움없이는 박상천의 국회부의장 꿈은 물거품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박상천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정세균을 지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정세균이 쉽게 통합민주당 당 대표가 됐다.
이번 전당대회를 계기로 민주계가 완전히 소멸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민주계 수장인 박상천이 정세균을 밀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역설적으로 박상천이 이번 전대를 통해 진짜통합을 제대로 실천한 셈이다.
민주당 국회부의장을 선출하는 현역들의 원내투표가 곧 실시된다. 민주계를 완벽하게 소멸시키고 진짜통합을 이룬 박상천 국회부의장 후보가 열린당 출신 현역들에게 몇 표를 얻게 될지 궁금해진다.
박상천은 더이상 계보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통합민주당내 열린계가 이를 인정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제 통합민주당 지도부와 18대 국회에는 민주계가 없다. 다만 민주계는 지난 총선과정에서 민주당을 탈당한 인사들과 정세균 통합민주당을 도로열린당이라고 평가하는 지지자들로 만 존재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