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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소식(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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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민영화' 광주은행의 빛과 그림자

'10년 만의 민영화' 광주은행의 빛과 그림자

by 송창헌 기자 2010.08.02

【광주=뉴시스】송창헌 기자 = '광주의 돈은 광주은행에 맡기자' '우리 고장을 위한 광주은행, 우리가 기르자'

1968년 11월 광주 동구 충장로5가에 둥지를 튼 광주은행이 창립 당시 내건 대표적인 슬로건들이다.

'지역 금융의 빛'을 표방하며 태동한 광주은행은 격동의 70, 80년대와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불혹에 이른 현재, 어닝 서프라이즈(Earning Surprise)를 달성할 정도로 '알짜 은행'으로 성장했다.

100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직원 수는 올 3월말 현재 1690명으로 늘었고 점포수도 출장소를 포함, 138곳에 이른다. 초기자본금 1억5000만 원으로 출항했던 광주은행호(號)는 진강현 초대 행장에서 현 송기진 행장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선장을 거치는 동안 자산 18조 원대의 중견 뱅크로 외적 성장을 이뤘다.

총수신과 총여신도 각각 12조3000억 원, 10조7800억 원으로 '10조 원 고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창립 첫해 100만 원이던 반기 순이익도 올해는 순영업수익 2643억 원, 당기순이익 757억 원으로 창립 42년 만에 최고의 실적을 거뒀다. 1년새 순영업이익은 22.5%, 당기순이익은 2.1배나 증가했다.

광주은행은 1차 경제개발 5○○○ 계획 과정에서 야기된 투자 재원 부족과 지역 격차를 해소하고, 2차년도 내자 조달을 위해 정부가 지방은행을 추진하면서 대구, 부산, 충청에 이어 4번째로 설립됐다.

이후 1970년대 석유파동과 금융 긴축, 80년대 중동건설과 민주화운동, 금융자율화, 1990년대 경영합리화와 혁신 경영, 2000년대 금융 구조조정 등을 겪어오며 초우량 지역은행의 기틀을 마련했다. '강소(强小) 은행'을 지향하며 񓠢년에는 세계 100대 은행에 진입하겠다"는 게 광주은행의 비전이다.

지역 밀착형 사업에도 힘써 '소호명가(所湖名家·호남에 소재하는 명가) 금융지원은 1호점 지정 2년 만에 270개소로 늘었고, 5·18과 여수엑스포, 광주비엔날레 후원, 지방은행 최초 학자금 대출시행, 미술관·주부대학 개설, 수해지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척박한 땅에 꿈을 안고 출발했지만, 시련과 좌절도 적잖았다. 1980년대 중반 동신금속 부도와 이른바 '화순온천개발사건' 등으로 부실 자산이 증가했고, 1989년에는 340억 원대 외환사고로 막대한 손실까지 입었다.

1990년 대에도 덕산그룹을 비롯해 아시아자동차, 한라중공업, 화니·가든백화점, 라인건설, 무등산관광호텔까지 덩치큰 업체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1조 원대 부실을 떠안았고, 대주주인 금호측의 3000억 원대 여신(수익증권 포함)도 버거운 짐이 됐다.

여기에 1000억 원대 주식투자 손실에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면서 발생한 1500억 원대 대우채 손실은 결국 광주은행에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급기야 2000년 '7·11 노정합의'를 통해 지주회사 편입이 현실화되는 단초가 됐다.

광주은행 한 관계자는 "특정 기업의 부도만으로도 휘청거렸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지역 5대 건설사가 죄다 흔들려도 경영에 큰 지장이 없을 만큼 맷집이 강해졌다"며 "이번 민영화 조치는 기업가치와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쪽짜리 향토은행'에서 10년 만에 독립 경영의 기틀을 마련한 광주은행. 광주은행이 부실여신과 대주주 횡포, 관치금융의 폐해라는 지난날의 아픔을 딛고 세계 100대 은행으로 우뚝설 수 있을 지 지역민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goodchang@newsis.com